보신탕 글씨 가려뒀다...“이제 붕어탕이나 팔 것” 상인들 체념
“30년 장사 어떻게 포기하나...막막할뿐”
“이걸 왜 찍는 거예요. 뭐 하려고 사진 찍으시는 겁니까?”
10일 오후 12시 30분쯤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 전국 최대 식용견 유통시장으로 알려진 이 곳에서 기자가 한 식용견 판매 상점의 냉장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상인이 밖으로 뛰쳐나와 항의했다.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하루가 지난 이날, 성남 모란시장과 대구 칠성시장 등 전국 식용견 판매 전통 시장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법이 통과되면서 3년 유예 기간 이후 폐업이나 전업을 해야만 하는 상인들은 생계를 걱정하며 체념하거나 분노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찾은 경기 성남시 모란 전통시장에는 개소주, 자라즙 등을 파는 건강원과 개고기 요리 전문점 등 20여곳이 몰려 있었다. 다만 점심 시간임에도 유동인구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한산했다. 일부 상인들은 식용견을 넣어둔 냉장고 앞에서 행인들에게 호객 행위를 했지만 구매해가는 이는 드물었다.
모란시장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는 70대 A씨는 “(법 통과는) 그냥 죽으라는 것 아니냐”며 “보상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라고 했다. 개소주·장어즙 등을 판매하는 상인 B씨도 “개소주나 개 관련된 것은 이제 취급도 안 할 것”이라며 “손님이 없는데 뭐하겠느냐. 붕어탕이나 만들어 팔 것”이라고 했다.
같은날 대구시 북구 칠성시장의 개 식당 거리 분위기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 곳은 한때 경기 성남 모란시장과 부산 구포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불렸다. 현재는 이 곳에 보신탕 가게 4곳과 건강원 8곳이 운영 중이다.
한 보신탕 가게는 간판에서 ‘개’ ‘보신탕’이라는 단어 전체에 테이프로 가려 보이지 않게 해놓고 있었다. 이 식당 주인인 이모(70)씨는 “30년 넘게 보신탕 가게를 운영해왔는데 3년 뒤면 이렇게 붙여놓고도 장사를 못한다는 거 아니냐”며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팔아도 되고 개고기는 법으로 먹지 말라는 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이냐”라고 했다. 이씨는 “70살 넘은 노인이 3년동안 뭘 어떻게 배워서 다른 일을 하겠느냐”라며 “일 안 해도 될 정도로 보상금만 준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그만두겠지만 그정도가 아니라면 그냥 문을 닫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또다른 보신탕집 주인 C(68)씨도 “우리가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세금 다 내고 장사했는데 복날만 되면 동물보호 단체들이 와서 괴롭히고, 이제는 아예 법으로 못하게 하느냐”고 했다. B씨는 “하도 최근에 말이 많아서 ‘이런 날이 곧 오겠구나’ 했지만 법이 통과해서 다들 뒤숭숭해하고 있다”며 “기대만큼 보상이 나오진 않을 것 같아서 답답하기만 하다”고 했다.
개 식용 금지법에 따르면, 앞으로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식용견을 키우거나 유통해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다만, 관련 업계의 전업과 폐업을 위해 3년간의 처벌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정부는 향후 식용견 업계에 대한 지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장주, 동물 보호 단체 등이 참여하는 ‘개 식용 종식 위원회’를 설치해 조율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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