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판박이’ 논란에 ‘출제 카르텔’ 제기…교육부 “유사성 차단”
EBS 교재에도 들어갔다가 빠져…교육부 긴급회의
“출제본부 입소 후에도 유사성 검토해 출제 배제”
“수능 이의신청 심사 대상에 문제 유사성도 포함”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사교육 일타강사가 만든 모의고사 문제의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문항에서도 ‘판박이’처럼 똑같이 출제됐다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능 출제진과 사교육 간 카르텔이 원인일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교육부는 이러한 ‘판박이 논란’이 커지자 사교육 문제를 검토, 유사성이 확인되면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10일 교육부에 따르면 해당 수능 지문은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출간한 저서(Too Much Information)에서 발췌된 것으로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의 지문으로 출제됐다. 문제는 재작년 11월 2023학년 수능이 치러지기 전인 9월 중하순에 A학원 일타강사가 만든 모의고사 문제에도 같은 지문이 실렸다는 점이다.
실제 수능에선 지문을 읽고 가장 적절한 주제를 찾는 문제가 출제됐지만 해당 모의고사에선 문맥상 어휘 활용이 적절치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가 나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이를 이유로 “우연의 일치”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당시 평가원이 접수한 수능 이의신청 660여 건 가운데 100여 건이 영어 23번 문항에 집중될 정도로 논란이 컸다. 수능 직전 미리 지문을 접해본 수험생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도 지난해 운영한 ‘사교육 카르텔 신고센터’에서 같은 문제 제기가 접수되자 입장을 선회, 경찰에 해당 사안을 수사 의뢰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날 공개한 자료(사교육 카르텔 10대 유형)에서 해당 지문이 들어간 선스타인 교수의 저서가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수능 출제진과의 카르텔이 원인이란 분석을 제기했다. 양 교수는 “해당 지문을 인용한 학술논문이 2017년 출간된 적이 있는데 해당 논문 저자 중 출제위원이 있거나 출제진과 연관된 사람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것이 아니라면 사교육 관계자가 대학원에서 출제 정보를 접했거나 수능 출제진과 일타강사가 결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수능 출제진과 사교육업체 간 연관·결탁 가능성이 아니라면 실제 수능과 같은 지문이 게재된 학원 모의고사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얘기다. 해당 지문은 이듬해 출간을 앞둔 EBS 교재 초안에도 실렸다가 제외됐다. 2023학년도 수능에 실린 지문과 같은 것이란 점이 발견돼 최종본에선 빠진 것이다.
수능 이의 심사에 ‘문제 유사성’ 포함
교육부도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사교육업체의 모의고사를 검토, 유사성이 확인될 경우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이날 이러한 내용의 사교육 카르텔 긴급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는 전날 오석환 차관 주재로 한국교육방송공사(EBS)·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교육부·EBS·평가원은 △사교육 강사와 현직교사 간 문제거래 원천 차단 △EBS 교재 집필·감수진의 사교육 유착 방지 △수능 출제·이의신청 처리방식 개선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수능출제기관인 평가원은 사교육업체의 모의고사를 검토, 유사성이 확인된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평가원 관계자는 “출제진이 수능 출제본부에 입소한 이후일지라도 사교육업체의 모의고사를 입수, 출제 중인 수능 문항과의 유사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수능 출제진은 시험 34일 전부터 합숙에 들어가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는데 앞으로는 이 기간에도 사교육 모의고사를 입수, 유사성을 확인하겠다는 얘기다. 교육 당국은 수능 직후 이의신청 과정에서도 ‘문제의 유사성’이 접수될 경우 이를 심사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 이의신청 이후에는 문항·정답 오류에 관한 문제 제기만 심사 대상에 포함했으나 앞으로는 사교육업체 모의고사 등과의 유사성도 심사·검토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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