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된 많은 자가 나중이 될 것이나…” 이 말뜻에 닿기 위해

한겨레 2024. 1. 1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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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말씀하셨다.

무한한 진리의 실상세계는 처음과 끝, 먼저와 나중과 같은 시공간의 구별이 없는 절대 평등한 '하나(One)의 자리'라는 것이다.

바울은 기독교인이 경험하는 역설적인 '음양의 법칙'(One)을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린도후서 6잘 8-10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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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말씀하셨다. “먼저 된 많은 자가 나중이 될 것이나, 그들은 하나이면서 같은 것이 되리라.”(도마복음 4장 2절)

마태(20:16)와 마가(10:31)처럼 신앙생활의 역전극(逆轉劇)을 암시하는 구절이 아니다. 무한한 진리의 실상세계는 처음과 끝, 먼저와 나중과 같은 시공간의 구별이 없는 절대 평등한 ‘하나(One)의 자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베드로후서 3장 8절)고, 불경은 “한 생각이 만년이다”고 한다. 진리를 깨달은 ‘하나의 경지’에서는 시공간과 양변을 여윈 것이기에 이원성의 분별이 없으며, 결국 어른과 아이, 삶과 죽음, 첫째와 꼴찌가 하나로 융합되어 분별이 사라진다. 파도가 그대로 물이고, 물이 그대로 파도인 진리의 세계에서는 ‘우는 자는 웃는 자’(누가복음 6장 21절)가 되듯이 모든 현상이 극에 이르면 반대를 향하는 원이 된다.(도덕경 7장)

‘하나(One)가 된 자’는 자신의 모든 이원성의 무명에서 벗어나 본래 신(부처)임을 깨닫고, ‘모든 존재와 합일한 자’이다. 시공간 속에는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이 있지만,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의 차원’(융합)에서의 구별은 무의미할 뿐이다.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이론도 물체들은 공간과 시간의 제한된 영역에 국한될 수 없다고 증명한다. 따라서 예수는 주객을 나누는 구속주(救贖主)라기 보다는 우리의 영성을 환기시키는 상기자이며,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를 자각한 각자이다.(요한복음 17장 21절)

과정신학에서는 “하나님은 시원적이면서 결과적이며, 시작과 끝으로 세계와 분리되지 않는다”고 한다. 역(易)신학도 선악, 전후는 ‘서로가 갈등하는 실재들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하나(One)’라고 가르친다. 바울은 기독교인이 경험하는 역설적인 ‘음양의 법칙’(One)을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린도후서 6잘 8-10절)라고 하였다. 따라서 하나(One)의 실상(천국)을 바로 보지 못하고, 물속에 비친 달과 같은 허상을 진실한 모습으로 보는 것, 즉 하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분별하는 마음인 에고가 바로 죄이다(요한복음 9잘 41절).

모든 종교가 생겨나고 거기서 수행법을 가르치는 이유는 사람들이 영원한 즐거움의 실재를 바로 보지 못하고,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로 보는 고통을 초탈하도록 도와주기 위함일 뿐이다.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모든 것은 오직 똑같은 에너지이자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의 실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실재를 신(神)이라고 부르든, 근원적 힘(氣)이라고 부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단일성(One)이 모든 것의 본질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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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은 시간상 길고 짧음의 구분이 사라짐을 “처음과 끝이 바로 지금의 한 생각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화엄경의 법성게는 “시간개념에서의 길이는 부분과 전체가 연결 된다”고 하였다. 노자는 하나의 도란 “통 털어 하나이므로 앞과 뒤는 서로 따라 다니며(도덕경 2장), 선·후, 내·외가 없는 초연한 자리이다”(도덕경 7장)고 한다. 장자(莊子)도 “만물일체이므로 삶과 죽음, 시작과 끝 등을 같은 것으로 여긴다”라고 하여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진리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성자들은 모두 유무상생의 원리와 같이 양극이 하나인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마가복음 1장 15절)고 하셨다. 우리는 '지금 여기'(Eternal now)에 먼저와 나중의 양극이 하나인 천국(진리)이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는 회개(metanoia)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마태복음 8장 13절)고 말씀하셨다. 진리가 그대 자신 안에 있으므로 보이는 세계는 보는 사람의 마음의 모습으로 나타나며(마음의 법칙), 육체와 물질은 마음의 창조물이라는 것이다(삼계유심소현·三界唯心所現, 화엄경).

따라서 우리는 먼저와 나중의 시공간을 초월한 진리(본성)를, 즉 모든 존재가 신성(불성)으로 충만해 있다는 하나(One)를, 자각 하게 될 때 삶 전체가 빛과 아름다움과 축복으로 가득 차 있는 천국(극락)임을 체험하게 된다.

글 구자만 박사(개신교 신학박사· 장로· 신흥지앤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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