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6 폭동 면책 특권 주장하며 ‘법정 유세’
“상원서 탄핵안 부결…면책을” 제기
재판부는 트럼프 측 주장에 회의적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시도 혐의 등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법원에 출석해 면책특권을 주장했다. 공화당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1주일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법정을 선거 유세 무대로 삼은 것이다. 재판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에서 열린 구두변론에 출석했다. 쟁점은 1·6 의회 폭동 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트럼프 측이 제기한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인정할 지 여부였다. 민주당 쪽에서 임명한 판사 2명과 공화당이 임명한 판사 1명으로 구성된 항소심 재판부는 트럼프 측 주장의 근거를 파고들었다.
플로렌스 판 판사는 “대통령이 돈을 받고 사면권을 팔고, 군사기밀을 팔고, 네이비실 6팀(해군 특수부대)에 정적을 제거하라고 명령할 수 있나. 그 경우 탄핵당하지 않아도 형사기소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트럼프 측은 1·6 사태 선동 혐의에 대해 2021년 상원이 탄핵안을 부결시킨 것을 들어 면책을 주장하고 있는데, 명백한 법률 위반일 경우에는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지 않냐고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판 판사는 트럼프 측이 탄핵 심판 당시에는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며 탄핵 기각을 주장하다가, 지금은 탄핵 기각을 이유로 면책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된다고도 지적했다.
공화당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캐런 헨더슨 판사도 트럼프 측 주장을 반박했다. 핸더슨 판사는 “(선거)법이 충실히 집행되도록 해야 할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가 형법 위반을 보호해준다고 말하는 것은 역설적”이라며 “길거리에 있는 사람이든 대통령이든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면책 인정 여부에 대한 결론을 신속하게 내릴 경우 추가 수사가 “봇물을 이룰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정에서는 양 측의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트럼프 측 존 사우어 변호인은 “대통령의 공식 행위에 대한 기소 승인은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며 면책 특권을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를 대리한 제임스 피어스 특별검사보는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권력을 이용해 민주공화국과 선거 제도를 근본적으로 전복하려고 시도한 적은 없었다”면서 “전례없는” 범죄를 다루고 있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는 침묵을 지켰지만 재판 뒤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면책권이 있어야 한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재판이 대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난리 법석(bedlam)이 일어날 것”이라고도 했는데, 1·6 의회 폭동 당시처럼 지지자들에게 폭력 사태를 부추긴 것 아니냐는 논란도 일고 있다.
법정 출석 의무가 없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날 심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도 선거전의 일환이라고 워싱턴포스트 등은 분석했다. 특히 아이오와 코커스를 엿새 앞두고 법정에서 직접 자신을 ‘방어’하는 이미지가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총 91개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측의 대응 전략은 각종 재판 일정을 대선 후로 최대한 미루는 것이다. 면책 특권 주장에 대한 항소법원의 판단은 3월로 예정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 재판 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사안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갈 경우 콜로라도주의 대선 출마 자격 박탈 판결과 더불어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두 건을 동시에 다루게 될 전망이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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