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한 야당…여당 족쇄 채우는 재정준칙에 반대하다니 [김명수 칼럼]
재정개혁법에 야당은 반대
21대 국회에서 처리하는 게
다음 대선에 유리하지 않을까
예산 편성권을 가진 정부가 주도해 여당이 의원입법 형식으로 지난해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야당 반대로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집권당은 선거 때 재정 활용이 제약된다. 칼자루를 쥔 정부와 여당이 올해 총선을 앞두고도 이런 결의를 보인 건 스스로 족쇄를 차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야당이 주장할 만 하지만 재정을 적극 활용해 경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에 담긴 재정준칙 법안 골자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대비 60%로,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대비 3% 이내로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경기 후퇴기엔 재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장치도 가미했다.
‘국가채무비율 60%’와 ‘재정적자비율 3%’는 유럽연합(EU)이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정한 규정이다. 유럽은 제도 도입 이후 3년만에 재정적자 비율을 GDP대비 5%대에서 2%대로 낮추는 효과를 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법상 재정준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건전재정을 사수했다. 국가채무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정한 적도 있었다. EU의 한계선 60%보다 낮게 책정한 건 국내 특수성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차이 20%포인트 중 10%포인트는 통일에 대비한 것이다. 나머지 10%포인트는 향후 늘어날 복지 예산을 준비하기 위한 ‘완충 장치’였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19 위기를 맞으면서 이 선을 넘기 시작했다. 무려 400조원의 정부부채가 늘어나면서 2020년 이 비율은 정부가 사수하려던 40%를 넘어섰다. 한번 뚝이 무너지니 부채 증가에 가속도가 붙어 이젠 50%에 달한다.
이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재정 건전성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기후변화나 고령화 같은 새 정책수요에 대응할 재정여력도 사라진다.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다양한 재정개혁 조치를 취했다. 2세대 재정준칙을 도입했고 ‘재정판 금융통화위원회’격인 독립적 재정기구를 설치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38개국 중 재정준칙 도입 경험이 없는 나라는 우리와 튀르키예 뿐이다.
특히 아일랜드는 2012년 독립적인 재정자문위원회를 설치해 국가채무비율을 크게 낮췄다. 2012년 120%에 달하던 이 비율을 2022년엔 한국의 49.4%보다 낮은 45.2%까지 끌어내렸다. 다국적기업 유치를 통한 법인세 증가도 기여를 했지만 재정개혁 조치가 빛을 발한 덕분이다. 아일랜드는 법인세 세수 초과분을 활용해 미래를 대비하는 1000억유로 규모 기금도 조성중이다. 2035년까지 매년 국민총소득의 일정비율(0.06%)을 그 재원으로 조성해 2041년부터 신규지출 수요에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기후변화 및 인프라 펀드(145억유로 규모)도 조성해 기후변화나 경기후퇴 대응에도 사용할 예정이다. 금융위기 여파로 IMF구제금융까지 받던 나라가 재정 모범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우리도 다른 선진국처럼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하는데 야당은 반대만 하니 한심하다. 야당이 차기 지방선거나 대통령 선거를 생각한다면 현 정부와 여당의 표를 노린 선심성 예산 남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재정준칙 법안을 이번 21대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게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4월 총선에 이어 2년 후 지방선거, 3년 후엔 대선이 이어진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선심성 예산의 효과를 누려 원내 1당이 된 뒤 재정준칙 도입을 폐기한다면 야당은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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