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 ‘어른 아이’ 최동훈 그 자체…‘외계+인 2부’
[영화감]은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제시하는 영화 큐레이션입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볼까 합니다. 매주 연재됩니다.
“최동훈 감독은 너무 어른인데, 한편으론 너무 아이 같아요. 아이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어른이랄까요.”(배우 김태리)
10일 개봉한 ‘외계+인 2부’(최동훈 연출)는 어른이면서 아이 같은 감독의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고려 시대 도사·신선과 현재의 사람, 미래의 로봇이 힘을 합쳐 외계인을 무찌르고 세계를 구한다는 이야기나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란 메시지는 아이의 순수한 상상력에서 우러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거와 미래 시점을 넘나들고, 온갖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며 끝내 퍼즐을 맞추는 이야기 방식은 아이로선 하기 힘든 장인의 솜씨죠.
갖가지 떡밥을 풀어놓기만 해서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던 1부와 달리 2부는 막판에 이야기가 맞춰집니다. 사람에 따라선 무릎을 탁 칠 만큼 쾌감 혹은 뭉클함을 주는 순간이 있어요. 1부에 비해 서사가 정돈된 2부는 충무로 최고의 이야기꾼 최동훈이란 어른의 솜씨가 부각됐습니다. 그러나 “디테일은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소재와 줄거리가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유치함은 여전합니다. 아니 유치한 게 당연합니다. 이 영화는 최동훈이 가진 소년으로서 상상력과 환상이 가장 많이 반영된 영화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팔짱 낀 어른의 경계심은 내려놓고, 유치와 키치의 경계에서 종횡무진 하는 영화가 지닌 재미를 누릴 수 있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 말, 외계인들로부터 세상을 구할 신검을 손에 쥔 이안(김태리)이 외계 죄수인 자장(김의성) 일당에게 쫓기는 장면부터 2부는 시작됩니다. 이안은 가드와 썬더(김우빈)를 찾아 다시 현재-2022년 서울-로 돌아가 외계 대기 ‘하바’의 폭발을 막아야 합니다. 여기에 고려 사람인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과 삼각산 도사 청운(조우진)과 흑설(염정아), 현재 배경인 관세청 수사관 민개인(이하늬)이 엮이며 외계인들의 수장 ‘설계자’와 한바탕 대결을 펼칩니다.
영화엔 최 감독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캐릭터와 세계관 소개에 급급했던 1부와 달리 2부에선 각양각색의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입담을 털고, 몸을 쓰며 합을 이룹니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도둑들’ 등 성공했던 최 감독의 작품은 늘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감상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죠. 캐릭터 수가 늘고, 세계관이 커졌지만 이 영화 역시 최 감독의 장점이 살아 있습니다. 무륵과 이안은 물론, 무륵의 부채 속 고양이들인 우왕(신정근)과 좌왕(이시훈)까지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서사를 부여했어요. “1부에서 뿌린 씨앗이 맛있게 익은 열매를 2부에서 따먹기만 하면 된다”는 이하늬의 말처럼, 꼬였던 퍼즐이 한데 맞춰집니다.
그런데 영화는 ‘타짜’보다는 ‘전우치’와 결이 비슷합니다. ‘전우치’는 감독의 영화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린 영화였죠. ‘전우치’와 ‘외계+인’은 도술을 부린다는 공통점 외에 결정적 공통 분모가 있습니다. ‘타짜’ 등이 어른이 나오는 어른의 영화라면, ‘외계+인’은 소년(무륵)과 소녀(이안)이 주인공인 아이의 영화입니다. 심지어 청운, 흑설, 민개인 모두 아이 같은 면이 많죠.
영화를 보면 이안의 침대 옆에 쌓여 있는 책들이 눈에 띕니다. 영화에 얼마나 아이 최동훈이 반영됐는지 보여주는 힌트입니다. ‘서유기’ ‘수호지’ ‘로봇대장’ 등 모두 감독이 소장하는 책들입니다. 최 감독은 “어렸을 때 그런 책에 완전 미쳐 있었다”며 “이안이란 꼬마가 봤을 법한 책 중에 가장 적합한 책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감독이 이안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걸. 이안이란 캐릭터는 감독의 페르소나 입니다. 그리고 이안과 우연처럼 만나 운명처럼 엮인 도사 무륵도 자기반영적입니다. 무륵이 도술을 부리는 어떤 순간은 ‘타짜’에서 고니(조승우)가 ‘아수라발발타’를 되뇌며 패를 돌리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아귀(김윤석)가 보기엔 분명히 밑장빼기를 했는데, 안 했던 거죠. 감독이 사랑하는 리얼함을 넘어서는 환상적인 순간입니다. 그는 “한국에선 리얼리즘을 최고로 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우리는 헛된 희망으로 살기도 하고 가끔 그게 현실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리얼리즘 밑에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여담인데 이안과 무륵은 쌍둥이 같은 면이 있습니다. 둘 다 자신의 정체를 모르지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죠. 최 감독의 영화엔 쌍둥이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의 최창혁, 최창호 형제가 대표적이죠. 넓게 봐서 이들은 위장을 한 캐릭터이기도 한데요. ‘도둑들’의 마카오 박이나 웨이 홍처럼 “알고 보니 그게 너였어?”란 설정이요. 최 감독은 “남으로 위장하는 설정을 좋아한다. 그리고 위장의 끝은 자기 자신을 변장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위장된 페르소나’ 같은 것이고, 그런 설정을 만들 때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년 만화 같은 설정이 도술과 외계인이란 영화의 재료와 합쳐지며 유치함이란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그런데 전술했듯 이 유치함은 영화의 만듦새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이런 걸 좋아하는 아이 최동훈이 가지고 온 겁니다. “‘외계+인’은 리얼리즘 밑에 있는 이상한 세계에서 탐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어요.”
영화엔 유쾌함 속에 진지함이 있고, 비장함 가운데 경쾌함이 있습니다. 1부에 비해 코미디적 색채가 진해졌는데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숨 가쁘게 흘러가는 영화를 이완해주는 장치에요. 특히 만담을 주고받는 청운과 흑설은 고려에서도 웃기고, 서울에 와서도 웃깁니다.
그런데 정작 빌런인 외계인의 존재감이 약해 매력 만점의 캐릭터들의 악전고투가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크게 와닿지 않다 보니 이들과 외계인의 싸움을 볼 때 ‘이입’보다 ‘구경’에 가까워진다. ‘신나긴 한데 얘네들 왜 이러고 있는 거지?’란 생각이 문득 들어요. 모두가 한데 모인 마지막 전투 장면은 ‘어벤져스’나 ‘아이언맨’ 같은 마블 히어로 영화나 주성치의 ‘서유기’가 좋든 싫든 연상됩니다. 베끼기와 오마주는 한 끗 차이인데요. ‘서유기’만큼은 감독이 진정 애정해서 차용했다는 느낌을 줍니다.
영화에는 실패를 몰랐던 거침없는 최동훈과 실패를 맛본 겸손한 최동훈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열차가 공중으로 탈선하고, 각종 도술이 난무하는 장면은 선배 격인 ‘전우치’의 5배, 10배 수준 같아요. 감독 본인이 신나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편집엔 감독의 노파심과 겸허함이 느껴집니다. 이미 찍어 놓은 재료를 가지고 1년 5개월 동안 최선의 요리를 만들어 나간 감독의 심정을 떠올려보면 경외심마저 들어요.
“이야기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1부에 대한 비난을 1년 5개월의 편집 기간 동안 되뇐 듯 영화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절합니다. 1부의 줄거리를 압축한 6분간의 오프닝 내레이션이 대표적이에요. (물론 이 친절함 덕분에 1부를 보지 않은 관객도 2부를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 시나리오 단계에선 수없이 쪼개진 과거와 현재가 지속해서 교차됐지만, 편집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를 크게 한 묶음으로 놓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외계+인 2부’는 너무 늦게 왔지만, 여전히 너무 이르게 도착한 ‘초청장’ 같습니다. 1부만 봐선 갸우뚱했던 ‘한국형 어벤져스’란 말이 비로소 납득이 갑니다.(영화를 만들 때와 2부가 개봉한 현재 ‘어벤져스’란 말이 주는 느낌이 많이 달라진 건 아쉬울 부분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1부와 2부 사이 1년 반이란 시간적 간극은 너무 깁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너무 빨리 관객에게 당도한 것 같습니다. 아이 같은 상상력과 어른의 솜씨가 이종 결합한 이 영화는 1부를 외면했던 관객들에겐 여전히 가볍게 비칠 소지가 다분합니다. 진지함을 깊음과, 가벼움을 얕음과 동일시하는 풍조 역시 영화의 흥행에 암초죠.
인간 최동훈이 물씬 깃든 영화인 만큼 감독의 말로 글을 정리할까 합니다. 이번 ‘외계+인’을 비롯해 최동훈 영화엔 늘 주인공이 산더미인데요. ‘도둑들’의 성공은 충무로에 집단 캐스팅 붐을 일으켰죠. 그 이유에 대한 최 감독의 변을 들어보시죠. “우리는 각자 자기 삶의 주인공이잖아요. 그래서 전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가 다 주인공이면 좋겠어요 다만 일정한 스토리가 있으니 저마다 인물들이 나왔다가 들어가는 거죠. 예를 들어 능파(진선규)가 나오는 장면은 능파가 주인공이고, 이안과 무륵은 조연이에요.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의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이정우 기자
<제 결론은요> ‘감’
아이의 마음으로 신나게 찍고, 어른의 솜씨로 울면서 편집했다. 솜씨에 감탄하고, 마음엔 지지를 보낸다.
솔직지수 ★★★★
순수재미 ★★★☆
독창지수 ★★
종합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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