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재명 습격범, 李가 대통령 되는 것 막으려 범행”

단독 범행으로 결론... “정치적 신념이 극단화”
흉기는 10만원짜리 등산용 칼... 칼등도 갈았다
李일정 5번 따라다녀, 6번째에 범행
사이코패스 검사는 ‘정상’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찌른 피의자 김모(67)씨는 왜곡된 정치적 신념에 사로잡혀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고자 범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이날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김씨와 사전에 범행을 함께 공모한 배후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10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퇴원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병원을 나서고 있다. 이 대표는병원 밖에서 기다리는 취재진 앞에서 소감을 밝힌 뒤 자리를 떠났다./이태경기자

부산경찰청은 10일 오후 종합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김씨의 진술 내용, 범행준비 과정과 행적을 시간대별로 설명하고, 구체적인 범행 방법을 시연하는 방식으로 수사 결과 브리핑을 진행했다.

경찰은 “디지털포렌식 자료와 참고인 진술, 프로파일러의 진술 분석을 종합해 김씨의 정치적 신념이 극단적 범행으로 이어졌다”라고 밝혔다. 또 경찰은 “김씨는 피해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고, 곧 있을 총선에서 피해자가 특정 세력에게 공천을 주어 다수의 의석수를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살해를 결심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살해하려고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미수)로 구속된 피의자 김모씨가 10일 오전 부산 연제구 연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김동환 기자

경찰이 모자이크 한 상태로 공개한 김씨의 '남기는 말'(변명문). /부산=김준호 기자

김씨 진술은 앞서 경찰에 체포됐을 당시 압수당한 ‘남기는 말’(8쪽 변명문)에도 비슷한 취지로 담겨 있다고 한다. 이 변명문과 관련해 경찰은 “총 7446자로, 쉽지 않은 문장 전개로 이해하기 어렵고 전체적인 내용은 범행 동기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경찰은 “요약하면 ‘사법부 내 종북 세력으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재판이 지연되어 피해자를 단죄하지 못하고 곧 있을 총선에 공천권을 행사하면 좌경화된 세력들에게 국회가 넘어가고, 나아가 피해자가 대통령이 되어 나라가 좌파세력들에게 넘어가게 되니 이를 저지하기 위해 범행하였으며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알려 자유인들의 구국열망과 행동에 마중물이 되고자 실행한다’는 취지다”고 밝혔다.

김씨가 범행 때 사용한 흉기. /부산=김준호 기자

범행은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작년 4월 인터넷을 통해 10만원 상당의 등산용 칼을 구입했다. 이 시기 이 대표를 살해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원래 칼등은 사용하지 않는 칼인데 칼등도 갈았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칼 손잡이 부분을 제거하고, 천테이프와 유리테이프로 감았다. 범행 당일엔 칼을 숨기기 위해 A4용지를 두 번 접어 감쌌고, 종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풀로 붙였다고 한다.

김씨는 이렇게 종이로 감싼 흉기를 오른 손에 들었고, 미리 준비한 플래카드 뒤로 숨겼다. 이 대표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미리 제작한 머리띠를 하고, 플래카드를 들었다. 그러면서 이 대표에게 “사인해달라”고 접근해 이 대표의 왼쪽 목 부위를 찔렀다.

이재명 대표가 입고 있던 셔츠를 뚫고 흉기가 들어가는 모습을 시연하는 모습. /부산=김준호 기자

경찰은 이날 흉기 등에 대한 일각의 의혹 해소를 위해 당시 현장을 찍은 영상을 보며 “경찰이 확보한 흉기(칼)가 범행에 쓰인게 맞다”고 밝혔다. 또 흉기와 범행 현장, 이 대표 옷에 묻은 혈흔 DNA도 일치한다고도 했다.

김씨는 작년 6월부터 범행 전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이 대표 공식 일정을 따라다녔다. 경찰은 “사전답사까지 하면서 범행 기회를 엿보던 중,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에서 범행했다”고 했다.

구체적인 행적과 관련해 경찰은 “김씨는 천안아산역 KTX 지하주차장에 자신의 차량을 주차하고 기차로 이동했다”고 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해 원래 사용하는 휴대전화와 지갑은 본인의 차량 안에 두고 유심칩은 미리 빼둬 숨겼다. 이 대표를 따라 다닐 때는 사무용 휴대폰을 지녔다고 한다.

범행 전날인 1일 김씨는 봉하마을에서 이 대표 지지자 일행을 만나 “평산마을로 간다”는 말을 듣고 평산마을로 함께 이동했다. 평산마을에서는 마을버스를 이용해 양산시 통도사 터미널까지 이동했고, 2분 후 울산행 시외버스를 탔다. 오후 5시50분 울산역에서 KTX를 타고 오후 6시11분 부산역에 내렸다. 가덕도 주민센터까지 김씨는 택시를 타고 이동해 오후 7시42분 내렸다. 김씨는 가덕도 인근의 슈퍼에서 주민을 만났고 차를 얻어타 인근 숙소로 이동했다.

경찰은 김씨 범행에 공모자나, 배후 세력은 없는 것으로 봤다. 다만, 김씨가 쓴 변명문을 외부에 발송하기로 약속하고, 실행에 옮긴 70대 남성 A씨를 살인미수방조 혐의로 붙잡아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A씨는 김씨로부터 ‘남기는 말’(변명문)을 우편 발송해 주기로 약속하고 실행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김씨가 지정한 충남 아산시 배방읍에 있는 우체통에 우편물을 넣었다. 경찰은 “A씨가 발송한 우편물은 가족에게 보낸 2부이고, 모두 범행 증거물로 확보하고 영장에 의해 압수했다”고 했다. 경찰은 7일 A씨를 충남에서 긴급 체포해 조사를 벌였지만 “가담 정도가 비교적 경미하고 고령인 점, 관련자 진술 등으로 입증이 충분히 된 점,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는 점으로 미뤄 석방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부산 가덕도에서 흉기 습격을 당하기 전 모습. /유튜브 캡처

경찰은 이 대표의 상처와 관련해서도 이날 자세히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대표) 귀밑에서 쇄골로 이어지는 부분에 1.4cm의 자상, 칼에 찔린 상처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목에 찔린 칼의 깊이는 2cm, 폭은 1.4cm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대표의 내경정맥에 9mm, 혈관은 60%의 손상이 확인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