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공개' 이재명 습격범은 '비공개'...신상공개 판단 왜 달랐나
확신에 의한 정치적 테러…유사 범죄 억제 효과도 의문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경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습격범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범죄자 신상 공개의 요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부산경찰청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는 지난 9일 이 대표를 공격한 피의자 김모씨(67·남)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신상 공개에 찬성하는 위원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않아 비공개 결정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위원 대다수는 김씨 범죄가 신상 공개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본 것일까.
◇ 신상공개 요건 중 '중대 피해' 부합할까…"살인미수 신상 공개된 적 없어"
법 규정상 경찰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려면 4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중대범죄신상공개법)에 따르면 ①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중대범죄 사건일 것 ②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③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④피의자가 미성년자(만 19세 미만)가 아닐 것 등 4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김씨는 지난 2일 오전 10시27분쯤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을 방문한 이 대표를 흉기로 공격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현행범인 만큼 2번 요건을 충족하고 성인이므로 4번 요건도 충족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1번 요건 중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살인미수 혐의자는 신상을 공개한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며 "이번에 공개할 경우 경찰이 '정치인'에 대해 특별대우를 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이 대표의) 피해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이 나왔고 사건 발생 8일 만에 퇴원한다는 점을 볼 때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정치인에 대한 테러라는 점에서 2006년 5월20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커터칼 피습 사건과 비교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을 기습했던 범인 지충호(50·남)는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신상이 공개됐지만, 18년 전 사건과 이번 사건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충호는 살인미수 혐의에서 무죄가 나왔고 상해 혐의만 인정됐다. 최근 흉악 범죄와 증오범죄가 늘어나면서 범죄자 신상 공개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도 달라졌다.
김성천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커터칼이 얼굴에 길이 11cm 상처를 내면서 안면신경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갔고 최대 깊이 3cm까지 들어가 중대한 피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이 대표 사건과 피해 정도를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정치 이념을 가진 확신범, 일반 대중에 폭력성 없어…범죄 예방 효과 미미
아울러 국민의 불안감 해소나 재범 방지·범죄예방 측면에서 김씨의 신상 공개가 얼마나 효과적일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3번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불특정 다수를 향하거나 명확한 동기가 없는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정치적 신념에 가까운 확신에 따라 특정인에 대한 테러를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 사건은 정치적인 이념이나 편견, 오해로 인한 증오범죄인데 일반 국민들이 그런 증오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유형의 범죄자는 일종의 '확신범'으로 자신의 판단이 대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처벌 받을 것을 알면서 범죄를 저지른다"며 "유사 범죄 억제 효과도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 교수는 "피의자는 얼굴을 다 내놓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해당 장면이 담긴 영상도 많이 퍼졌다"며 "범죄 예방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경찰이 피의자의 신상을 책임지고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김 교수도 "피의자는 심리적으로 비정상적인 상태"라며 "일반 대중에게 범죄적으로 폭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 작년 한 해 신상 공개된 범죄자 9명…"국민 알권리와 피의자 인권 모두 고려해야"
최근 특정강력범죄가 늘면서 신상 공개가 이뤄지는 범죄자 수도 같이 증가하는 추세다.
작년 한 해에만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23)과 신림역 칼부림 사건의 조선(33), 신림동 공원 강간살인 사건의 최윤종(30) 등 9명의 신상이 공개됐다. 이는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연도별로 보면 △2010년 2명 △2012년 1명 △2014년 1명 △2015년 2명 △2016년 4명 △2017년 1명 △2018년 3명으로 이어지다 △2019년 5명 △2020년 9명 △2021년 10명 △2022년 5명을 기록했다.
특히 2020년과 2021년에는 'N번방 사건'과 관련해 각각 7명과 2명의 신상이 공개됐다.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신상정보 공개는 형사사법적 제재가 아니라 '공개적 망신주기'를 통한 시민적 제재로 범죄 억제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알권리와 피의자의 인권 보호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며 "그런 면을 고려해 위원회에서 아마 논의를 했고 결과적으로는 (김씨 신상을) 알리는 것보다 안 알리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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