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사랑[유희경의 시:선(詩:選)]

2024. 1. 10. 11:3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파랑은 친구네 아들이다.

아기일 때부터 봐와서인지 파랑은 스스럼없이 나를 대한다.

파랑이 종알종알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파랑은 요즘 트럼펫에 빠져 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로 어깨와 어깨를 기대요/ 딱딱은 안 돼요/ 톡톡만 괜찮아요// 우리 서로 심장과 심장을 맞대요/ 쾅쾅은 안 돼요/ 콩콩만 괜찮아요// 우리 서로 볼과 볼을 비벼요/ 싹싹은 안 돼요/ 살살만 괜찮아요// 그러니까 왜 이리 조심이냐고요?/ 깨지니까!’

-김민정 ‘달걀도 사랑해’(시 에세이 ‘읽을, 거리’에서)

파랑은 친구네 아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으로 그맘때 아이답게 맑고 영리하다. 아기일 때부터 봐와서인지 파랑은 스스럼없이 나를 대한다. 파랑이 종알종알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나보다 아는 게 많은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을 정도이다.

파랑은 요즘 트럼펫에 빠져 있다. 지난 연말 서점에 와서는 트럼펫에 대한 온갖 상식을 알려주는 거였다. 덕분에 나는 트럼펫의 종류라든가, 트럼펫 회사들의 이름, 유명 트럼페터 등등에 대해 듣게 됐다. 신이 나서 재잘대는 파랑의 귀여운 머리꼭지 너머로 복잡한 기색이 역력한 파랑이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파랑은 무언가에 빠지면 그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아들이 사랑스러운 한편 걱정도 되는 모양이다. 잘해도 걱정, 못해도 걱정인 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 파랑은 조금도 괘념치 않고 트럼펫을 마스터해 군악대에 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까지 했다. 이런 사랑이라니. 얼마나 끼끗한가. 어른에게는 사랑과 좋음에도 계산속이 필요하다.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을 따져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랑이 영영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바람도 몰래 가져보았다.

아이가 우리의 미래인 만큼 어른 또한 아이의 미래겠지. 아이의 사랑을 지켜줄 의무가 어른에겐 있다. 파랑의 부모도 결국 연습용 트럼펫을 구해준 모양이다. 아빠와 함께 트럼펫을 배우러 다니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나의 마음도 무얼 해주고 싶어 두근두근 자꾸 조바심을 냈다.

시인·서점지기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