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면책 주장하다 판사에 면박 당하자 “나 체포하면 난리 난다”

‘1·6 의사당 난동’ 사주 혐의
항소법원 출석해 면책 주장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9일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에서 면책권 주장에 대한 심리가 끝난 뒤 근처 호텔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1·6 의사당 난동 사태’를 사주한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은 면책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항소법원에 직접 출석했으나 재판부로부터 면박을 당했다. ‘법정 투쟁’에 먹구름이 낀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정을 나선 직후 자신이 처벌 받는다면 “난리가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 연방순회항소법원은 9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석한 가운데 ‘대통령 재임 중 한 일은 면책 대상’이라는 그의 주장에 대한 심리를 진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직접 출석할 의무는 없었으나 심리에 참여했다.

재판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직접 반박했다. 플로렌스 팬 판사는 “대통령은 사면을 돈으로 거래하고, 군사 기밀을 팔고, (오사마 빈라덴을 살해한 특수부대인) 네이비실 6팀에 정치적 라이벌을 살해하라고 명령해도 돼냐”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변호인단을 향해 “불법적이거나 위헌적인 목적을 지녔더라도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으로 한 행위이면 형사소추로부터 면제된다는 게 당신들 입장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재판부 구성원 3명 중 유일하게 공화당 쪽(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인 캐런 헨더슨도 “법률을 충실히 집행하도록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가 그가 형법을 위반하도록 허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역설적”이라며 면책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길거리에 있는 사람이든 대통령이든 (범죄를 저질렀으면)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 사태를 이유로 한 탄핵심판이 상원에서 기각됐기 때문에 형사처벌도 불가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탄핵심판 때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으니까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더니, 이제는 탄핵이 기각됐으니까 형사처벌을 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냐고 꼬집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 변호인단은 재직 중의 일로 처벌 받는다면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비롯해 어떤 대통령도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그런 선례가 생기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리 뒤 법원과 가까운 호텔로 이동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게는 면책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또 그러지 않으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이라는 변호인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이 나라에 난리가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기자들이 ‘난리’(bedlam)가 무슨 뜻인지, 지지자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라고 요구할 것인지 등을 물었으나 답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본안 재판을 대선 뒤로 미루려고 면책 주장을 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그의 면책 주장을 기각한 워싱턴 연방지법의 본안 재판기일은 3월4일로 잡혀 있는데, 면책 주장에 대한 항소법원 내지 연방대법원의 판단과 심리 기간에 따라 이 일정이 미뤄질 수 있다. 연방대법원은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1·6 사태를 사주했다는 이유로 그의 공화당 대선 경선 출마 자격을 박탈한 판결도 심리하고 있다. 면책 주장 신청 사건까지 올라오면 연방대법원은 대선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사건을 2건이나 다루게 된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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