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영의 sound nomad] 카네기 홀의 음향을 내 거실로 가져오다
공간은 힘을 가진다. 수많은 가상 현실 및 메타버스와 연계된 영상 기술의 발전에는 공간이 가지는 영향력을 제어하고 싶은 근본적이고도 인문학적인 동기가 내재돼 있다고 생각한다. 최신의 연구와 기술력의 발전으로 인해 반응형 공간, 변형 공간, 혹은 연결된 공간 등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공간을 다루는 기술은 이미 현실에 깊숙이 침투했다. 특히 디스플레이 기술의 발전은 이전과는 다른 실감형 시각 정보의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라스베가스의 MSG스피어 공연장, 삼성전자의 마이크로 LED기술이 집약된 ‘더 월(The Wall)’을 사용한 CJ ENM의 버추얼 프로덕션 스테이지 등이 보여주는 시각 정보의 몰입감 재현은 이미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공간을 향유하게 해줬다. 공간의 힘을 제어하고 사용하려는 인류의 소망은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에서 다양하게 실현되고 있다.
공간이 가지는 힘은 시각 정보에 국한되지 않는다. 청각 정보 또한 공간에 따라 달라지고, 그 소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당신이 듣고 있는 것이 지금의 당신을 만든다’ 는 청각 연구자들의 주장이 그다지 극단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공간이란 존재가 청각의 영역 마저도 그 영향력 아래에 두고 관장하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갈등은 공간과 소리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직업 특성상 소리를 다루는 필자는 이미 10여년 이상 귀마개를 하지 않고는 숙면을 취할 수가 없다. 수없이 많은 소리들의 의미를 처리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의미없이 여겨지는 소리가 필자에게는 없다. 그렇기에 잠을 자면서도 주위의 소리가 가지는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분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위의 청각 정보를 제어하기 위해 필자는 저렴하고 고효율인 방법으로 귀마개를 선택했다. 아마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더 큰 집을 사고 방음벽을 설치했을 것이다. 나의 삶을 나 답게 하는 다른 하나의 이유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힘은 지금도 실존하고 있다.
특히 음악은 공간의 힘과 운명공동체라 할 만큼 긴밀한 관계에 있다. 프랑스 철학자 폴 발레리(Paul Valéry)는 ‘음악과 건축은 사람을 총체적으로 감쌀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과는 확연히 구분된다’고 공간을 다루는 건축과 음악의 예술적 동질성에 대해서 기술했다. 인류는 음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음악이 연주되는 공간도 함께 발전시켜 왔다.
신께 더 거룩한 음악을 올리기 위한 중세 건축가들의 노력은 건축 음향의 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 같은 음악이라고 해도 공간을 달리 하면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짜르트에게도 이 사실은 놀라운 경험이었던 듯하다. 이 대 작곡자는 지인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그런데 이 음악을 오케스트라 가까이에 있는 박스석 근처에서 들으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은 아마 모를 거예요.
갤러리 석에서 듣는 소리보다 훨씬 좋아요.“ 지금도 어느 공연장에서는 어느 좌석이 가장 좋은 지에 대한 정보가 전문가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고, 특정 공연장의 어떤 좌석은 입소문을 타고 발매 개시 몇 분만에 (혹은 몇 초 만에) 매진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공연장이라고 해도 그날 연주되는 곡의 음악적 특성과 궁합이 맞지 않으면 그 결과는 참담한 비극으로 끝나기도 한다. 물론 일반 관객에게 음악과 공간의 맥락적 마리아쥬까지 모두 고려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잔혹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꼰대처럼 다시 말하게 된다. 최적의 음악 감상은 최적의 공간을 요구한다. 오케스트라용 콘서트 홀, 소규모 실내악 음악을 위한 홀, 독주용을 위한 홀, 오페라를 위한 홀 등이 제각각 존재하는 것은 연주되는 음악이 가지는 음향적인 에너지와 주어진 공간의 상호작용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자로서 필자가 가졌던 호기심은 다음과 같았다. ‘가상 현실 기술이 시각 정보를 제어해서 공간의 구속력을 벗어나 그 힘을 활용할 수 있다면, 이와 유사하게 현재의 기술력으로 청각 정보와 관련된 공간의 힘의 제한을 풀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 호기심은 필자만의 것은 아니었고 이미 오랜 시간동안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다. 가장 쉬운 방법은 공간 안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두 공간의 연결을 바꾸어 원하는 체적을 만드는 방식이다. 일본 동경 예술대학의 한 공연장은 천장이 기계식으로 움직여 음악에 최적화된 공연장 크기를 만들어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잔향이 적은 환경이 필요한 경우 천장이 내려와 전체 체적을 줄여주고, 그 반대의 경우 천장을 끝까지 올려 최대 체적을 유지하게 한다. 미국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한 공연장은 공연의 필요에 따라 어쿠스틱 챔버(Acoustic chamber)로 불리우는 외부 공간으로 연결된 문을 개방해 원하는 공연장의 체적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만약 이러한 공연장의 객석 뒤에 개방된 문이 있다 하더라도 출입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쿠스틱 챔버 속 아른한 사이렌들의 매력적인 에코에 빠져들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은 기본적으로 한번 정한 설정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고, 초기 공사비가 많이 (아주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연구자들은 상대적으로 쉬운 방법인 전기적 장비 활용을 통해 청각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네덜란드의 필립스 연구소는 전기 음향을 이용해 잔향감을 증가시키는 ‘스테레오 리버브레이션(Stereo Reverberation)’이라는 시스템을 무려 1955년에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리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이 시스템에 의해서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를 실험했다. 공간 안에 공간을 넣는 대신, 필요한 외부 공간의 체적을 ‘신호처리’로 대신한 셈이다. 음원에서 발생한 소리를 마이크로 받아들인 후, 신호 처리로 얻어낸 가상의 외부 공간이 만들어내야하는 반사음들을 만들고, 다시 그 반사음들을 여러 개의 스피커를 통해서 재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청각 공간이 전기 신호 처리를 통해 새롭게 탄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과 같았다.
위 개념을 확대하면 외벽이 없는 야외 공연장을 마치 실내 공연장처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가상의 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 그랜트 파크 음악 축제의 메인 야외 공연장인 ‘더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The Jay Pritzker Pavilion)’이 좋은 예다. 이 공연장은 평균 만 명이 넘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가상의 컨서트 홀의 음향을 전달한다. 멀지 않은 일본 이케부쿠로에 있는 극장(Global Ring Theater)도 이와 동일한 아이디어를 활용한 야외 공연장이다. 사면이 뚫려 있는 공간임에도 마치 실내 공연장 안에 있는 듯한 음향을 연주자 및 청중에게 전달한다. 이 극장은 일본 야마하 연구소가 개발한 전기 음향 제어 시스템 AFC(Active Field Control)을 이용해 음악에 맞는 최적화된 청각 공간을 재현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공연장의 예는 시각을 넘어 청각 공간 마저도 사람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가능함을 잘 보여준다.
물론 아직도 기술적 한계는 존재한다. 위의 사례들은 공용 공간에만 적용될 뿐 개인 공간의 경우는 아니다. 개인의 공간을 특정 음향 공간으로 변화시켜 주는 기술은 아직 그렇게 우리 곁에 가까이 있지 않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연구진들이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스피커의 사운드가 퍼져 나가는 방사 패턴 혹은 재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쉽게 구현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물론 머지 않아 현재 스피커의 한계를 극복하여 새로운 물질을 기반으로 하는 초소형, 초박형 스피커가 등장할 것으로 필자는 예상하고 있다. 10여년 전, Yamaha의 콘덴서를 활용한 얇고(thin), 가볍고 (light) 플렉서블(flexible)한 (그래서 앞 글자만 따서 TLF라 불리웠지만 현재는 YFS 로 제품명을 바꾼) 스피커의 시제품을 활용해 개인공간의 음향 제어를 시연한 적이 있다. 이처럼 지금도 어디선가 청각 공간의 힘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기 그지없다. 머지 않은 미래에 출시된 작은 스피커 시스템이 내 거실을 마치 미국 카네기 홀Carnegie Hall의 음향으로 만들어 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의 기타 연주를 카네기 홀에서 해볼 수 있다니! 입가에 미소를 스며들게 하는 즐거운 상상이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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