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천대현 호계중 코치, “농구는 나와 뗄 수 없는 존재”

손동환 2024. 1. 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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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12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2023년 11월 17일 오전에 진행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엘리트 농구 지도자와 엘리트 농구 선수들은 코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코트에서 성장하고, 코트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천대현 호계중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코트에서 생활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농구공과 함께 했다. 그런 이유로, “농구는 저에게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고 ‘농구’와 ‘자신’의 관계를 설정했다.

“운이 너무 좋았습니다”
울산 모비스(현 울산 현대모비스)는 2007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0순위 지명권과 2라운드 1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1라운드 10순위로 함지훈을, 2라운드 1순위로 박구영(현 울산 현대모비스 코치)을 선발했다.
함지훈은 히트 상품이 됐다. 10순위임에도 불구하고, 모비스를 짊어질 빅맨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모비스는 2008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0순위 지명권을 또 한 번 얻었다. 수비와 3점에 능한 천대현을 선택했다.
천대현도 팀에 필요한 조각으로 거듭났다. 데뷔 시즌부터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함지훈과 천대현의 활약으로 인해, ‘10순위 신화’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2008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0순위로 모비스에 입단했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1년을 쉬었어요.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도, 부상 때문에 많이 뛰지 못했고요. 그래서 (드래프트를) 기대를 전혀 안 했죠.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1라운드에 뽑혀서, 너무 놀랐어요. 당황스럽지만 기뻤고요. 여러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모비스의 첫 인상은 어떠셨나요?
‘우와...’라는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프로에 처음 가다 보니, 시설과 환경 모두 놀라웠거든요. 그저 좋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유재학 감독님은 어떠셨나요?
다른 팀에서 이적을 했다면, 유재학 감독님과 다른 분의 차이를 느꼈을 겁니다. 그렇지만 대학교 졸업 직후에 유재학 감독님을 뵙다 보니, 큰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또, 대학교 때 무서운 선생님들을 많이 접했고요.(웃음) 그래서 ‘유재학 감독님은 원래 이런 분이시구나’라고만 생각했어요.(웃음)
데뷔 시즌부터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천대현은 2008~2009시즌 정규리그 53경기에 나섰다. 경기당 19분 25초 동안, 5.3점 1.5리바운드 1.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다만, 데뷔 시즌 기록이 커리어 하이가 됐다)

합류 직후라, 모비스의 정확한 사정을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팀의 틀이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기회를 받은 것 같습니다. 운이 너무 좋았죠.
정규리그 1위도 경험했습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한 건 아니었지만, 정규리그라는 긴 레이스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농구 하면서 1위를 해본 게 처음이라,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저희 팀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정규리그 1위를 경험한 천대현은 데뷔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 하지만 데뷔 두 번째 시즌 기록은 좋지 않았다. 출전 관련 기록부터 그랬다.
그러나 모비스는 최강의 전력을 과시했다. 2009~2010시즌 통합 챔피언이 됐다. 양동근(현 울산 현대모비스 수석코치)과 함지훈으로 이뤄진 국내 선수 원투펀치에, 브라이언 던스턴과 애런 헤인즈로 이뤄진 외국 선수 조합이 시너지 효과를 냈기 때문.
천대현 또한 데뷔 첫 번째 통합 우승을 경험했다. 2시즌만 뛰고도, 2번의 정규리그 1위와 1번의 통합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천대현은 쉼표를 찍어야 했다. 2009~2010시즌 종료 후 군으로 입대했기 때문.

데뷔 두 번째 시즌에는 이전보다 좋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천대현은 2009~2010시즌 정규리그 29경기에 나섰다. 경기당 평균 12분 36초 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비시즌 내내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개막 하루 전인가 이틀 전에 다쳤어요. 부상에 발목을 잡혔죠.
하지만 모비스는 통합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시즌 중반부터 조금씩 뛰었지만, 부상 후 복귀는 저한테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전 시즌에 하지 못했던 통합 우승을 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통합 우승과 정규리그 1위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정규리그 1위는 뭔가 과정 속에서의 우승이라는 느낌이었고, 통합 우승은 ‘우리가 최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았다’ 혹은 ‘최후의 승자’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통합 우승 후 군에 입대했습니다. 군대에서는 어떤 것들을 준비했나요?
‘제대하면 이런 역할을 해야 할 거다. 제대하면 이런 것들을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운동했습니다. 우선 부상 없는 몸을 준비했죠.
제대 복귀 선수들이 팀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습니다.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지금처럼 시즌 중에 제대한 것도 아니었고, 저는 (제대 직후에)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았거든요.

시련은 있어도, 반지는 따라온다?
천대현은 군 제대 후 2012~2013시즌에 합류했다. ‘양동근-김시래(현 서울 삼성)-문태영-함지훈’ 등 4명의 국내 선수가 ‘판타스틱 4’를 형성했다. 주축들이 탄탄했기에, 천대현은 기회를 얻지 못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대현은 주어진 기회에서 자기 몫을 하는 선수였다. 상대를 악착같이 따라다니는 수비와 찬스 때 던지는 3점으로 주전들의 강력함을 극대화했다. 모비스의 2연속 우승(2012~2013, 2013~2014)에 기여했다.
그러나 천대현은 2014년 8월 큰 부상을 당했다. 아킬레스건 파열. 2014~2015시즌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모비스는 또 한 번 우승. KBL 역대 최초로 3연속 우승을 거뒀다. 천대현한테 시련은 있어도, 우승 복은 떠나지 않았다.

2012~2013시즌부터 두 번의 우승을 연달아 경험했습니다.
(양)동근이형과 (문)태영이형, (라)건아가 처음 가세했습니다. (함)지훈이도 전성기를 구가했고요. 모든 것들이 좋았습니다. 반면, 저 같은 선수의 입지는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더 쳤습니다.(웃음)
2013~2014시즌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순간이 기억납니다.
(천대현은 챔피언 결정전 6차전 마지막 수비에서 양우섭의 슈팅을 블록슛했다. 덕분에, 모비스는 6차전을 잡았다.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했다)

정확히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노린 게 아니었거든요. 그렇지만 ‘이거 먹히면 진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손을 열심히 뻗었습니다. 그게 우연찮게 걸린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블록슛한 후, 동근이형이 볼을 잡고 타임 아웃을 요청했습니다. 그때서야 ‘우승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생각했어요.
또, 저희가 그 경기를 만약에 졌다면, 우승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지훈이가 6차전 막판에 부상을 입었거든요. 그렇지만 동근이형이 “집중하자”고 저희를 다잡아줬습니다. 그게 시리즈를 끝낸 원동력이 됐고요.
2014년 8월 아킬레스건 파열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비스는 KBL 역대 최초로 3연속 우승을 기록했는데요.
우승할 때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도 아쉬웠지만, 그때가 FA(자유계약) 직전 시즌이었어요. 결혼하기 직전이었고요. 그런 점들이 많이 아쉬웠어요.
2015~2016시즌에 복귀했습니다. 큰 부상 이후 복귀라, 코트가 낯설었을 것 같아요.
원래는 그렇게 빨리 복귀하면 안 됐어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해결할 게 많다 보니, 무리도 했고 욕심도 냈어요. 다만, 그런 마음 때문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었고, 차기 시즌 준비에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물론, 코트 감각을 회복하는 일과 경기 체력을 끌어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정규리그를 뛰는 일도 많이 없었죠. 하지만 D리그를 뛰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어요.

“많이 배웠습니다”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대현도 그랬다. 2017~2018시즌 종료 후 은퇴한 천대현은 휘문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2020년부터 호계중에서 코치를 맡고 있다.
프로에서만 9년을 보낸 천대현이다. 그런 천대현이 아마추어에서 4년 넘게 생활하고 있다. 기초부터 알려줘야 하는 중학교 코치이기에, 많은 걸 느꼈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우기도 했다.

휘문고 A코치로 지도자를 시작했습니다.
휘문고 선배님이신 김승관 코치님께서 “나랑 같이 해보자”고 제의하셨습니다. 저도 마침 지도자 공부를 생각하던 차에, 선배님께서 너무 좋은 제의를 해주셨어요. 덕분에, 너무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
2020년에는 호계중 코치로 부임하셨는데요.
호계중 부장 선생님을 선수 시절 때 뵌 적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게도 저를 좋게 봐주셨고, “이런 상황이 있는데,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전임 코치를 맡아보고 싶어서,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웃음)
프로 선수들을 오랜 시간 보다가, 아마추어 선수들을 접하셨습니다. 차이점이 많았을 건데요.
휘문고 같은 경우, 휘문고 선수들과 휘문중 선수들이 함께 훈련합니다. 고등학생 선수들을 봐주면서, 중학생 선수들도 지도할 수 있었죠. 고등학교 선수들에게는 눈높이를 크게 낮추지 않았지만, 중학교 선수들에게는 눈높이를 많이 낮췄어요. 그런 차이들 속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느끼는 게 더 많았을 것 같아요.
프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프로에서 배웠던 것들을 많이 알려줬습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친구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도 있어요. 그리고 학생 선수들의 생각이 예전 저희 때와는 다르고요.
또, 고등학생과 중학생의 환경 차이도 존재합니다. 고등학생은 입시와 성적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중학생은 기초부터 배워야 해요. 농구를 대하는 태도와 인성도 포함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더 다양한 것들을 배웠던 것 같아요.

“농구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죠”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천대현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농구 인생을 돌아봐달라”고 말이다.
천대현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코트에서 지내고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농구와 함께 했다. 그래서 “농구와 저는 뗄 수 없어요(웃음)”라며 미소 지었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선수를 마무리했지만, 아마추어 지도자로서 코트에 있습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농구와 함께 했어요. 만약 제 인생에서 농구를 지운다면, 제 인생에서 남는 게 없을 것 같아요. 농구와는 뗄레야 뗄 수 없어요.(웃음)
‘천대현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잘했다’고 보는 분들도 ‘부족했다’고 보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리고 저는 나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많은 인복과 도움 덕분에 지금까지 코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웃음)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고민을 해볼 것 같아요.(웃음) 좋은 것도 있었지만, 힘들기도 했으니까요. ‘하겠다’고도 단언할 수 없지만, ‘안 하겠다’는 확신도 못할 것 같아요.(웃음)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본문 첫 번째 사진)
사진 제공 = KBL(본문 2~5번째 사진)-천대현(본문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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