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수 칼럼] 이민정책은 ‘동료 시민’ 정책이다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이민청 설립을 추진하던 법무부 장관이 여당 대표에 취임했다. 논의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겠지만, 차분히 점검해볼 여유가 생긴 것이기도 하다. 이주자·난민 문제의 정치 지형은 다른 사회문제와는 사뭇 다르다. 한쪽에는 이민, 난민, 다문화 등에 격렬히 반대하는 흐름이 있다. 대략 2010년대 초반부터 온라인에서 시작되어 2018년 제주 난민 사태 때는 서울 시내에서 반대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치인들도 무대에 올랐고, 난민법 폐지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 국민의힘 당사와 과천 법무부 청사 앞에서 열린 이민청 설립 반대 시위도 그 연장선에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이민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저출생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고용·주거·양육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기적적으로 바닥을 찍고 상승 곡선을 그린다고 해도 20년, 30년 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남은 것은 이민뿐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민 확대를 내세운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민청 설립 논의 자체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적극적이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고, 감각이 좋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이민청 설립을 전면에 내세웠을 뿐이다. 문제는 ‘조직’보다는 이민 정책에 대한 ‘관점’이다.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이 문제를 다뤄온 방식은 관리와 통제 일변도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출입국‘관리’국에서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로 확대 개편되었지만 이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이번 정부에서는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한 장관은 수시로 불법체류자 단속 의지를 밝혔고, 지난해 역대 최다인 3만8천여명을 단속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공연장이나 교회를 급습하는 등 무리수를 두기도 했고, 단속 과정이나 구금시설의 인권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최근 한 대학에서는 유학생 22명을 강제출국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법무부는 ‘외국인보호규칙’을 개정했으나 오히려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보호장비 사용을 합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헌법재판소가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이주민을 부실한 절차로 무기한 구금할 수 있도록 한 ‘출입국관리법’ 규정에 위헌 결정을 내렸으나, 법 개정 등 후속 조처는 뒤따르지 않고 있다. 법무부의 이민청 추진 방안에는 뜬금없이 외국인 투표권 제한과 난민심사 강화 조치가 함께 강조되어 있다. 지난달 발표된 ‘제4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도 통제와 관리 위주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3차 기본계획 때 포함되어 있던 ‘외국인 차별·혐오 방지 대책’은 빠졌고, 전국 44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결국 정부의 이민청 설립 취지는, ‘불법’체류자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면서 ‘우수 인재 유치’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나쁜 이주자’는 쫓아내고 ‘좋은 이주자’는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주자 문제는 선악이나 합법·불법으로 쉽게 갈라 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불법’체류자라고 하니까 엄청난 해악을 끼친 범죄자 같지만, 실은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뿐 대한민국의 필요에 의해 국가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동료 시민’이다. 국제사회가 불법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자’라고 부르면서 동등한 자격을 가진 시민으로서 인권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법’체류는 한국의 이민 정책이 낳은 산물이며, 그 원인을 제쳐놓고 ‘불법’이니 추방해야 한다는 식으로는 책임을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미등록 이주자를 단속하고 추방하는 상황에서 과연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가 이 문제에 손 놓고 있는 사이, 행정부가 ‘조직’ 설립으로 치고 나갔을 뿐이다. 실세 장관이 나섰지만 여당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고, 민주당은 아예 관심 밖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재외동포·이주·다문화 정책에 힘을 쏟았던 전통은 문재인 정부에서 희미해졌고, 지금은 야당으로서 존재감도 없다. 문제는 어떤 ‘관점’으로 풀어갈 것인가이다. 이제라도 이민 정책에 대한 시민적 공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기존의 단속·통제 위주 기조에 대한 반성 없이, 노동력 확보라는 도구적 관점만 추가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민 정책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동료 시민’에 대한 정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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