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화폭에 일렁이는 파도… 당신이 본 바다는 어떤 표정입니까
고요한 먹의 농담·힘찬 운필로
숲 등 자연의 얼굴 오롯이 담아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작품 평가
“화내는 바다서 웃는 바다까지
보는 사람 따라 모습 달라져”
전시 기업 디스트릭트와 협업
미디어 아트 ‘산수화’도 눈길
목정(木丁) 방의걸(86)의 붓은 커다란 종이에 바다를 담는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흐름과 파도의 일렁거림에 따라 그의 바다는 표정을 바꾼다. 유려하게 흐르는 고고한 물결이 있는가 하면, 큼지막하고 차가운 파도가 화폭을 흔들 때도 있다. 이를 두고 방의걸은 이렇게 말한다. “바다의 표정은 다 달라요. 화내는 놈도 있지만 웃는 놈도 있지요.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겁니다.” 살아가며 얻은 경험과 감정이 자연에 고스란히 투영된단 뜻이다. 성난 파도도 따뜻한 낙조도 모두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상 언어가 빚어낸 것이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방의걸의 개인전 ‘생성의 결’엔 바다부터 숲까지 수많은 자연의 얼굴이 걸렸다. 마음에서 길어 올린 느낌을 오롯이 담은 ‘심경산수화(心景山水畵)’다. 새해를 맞아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서로 저마다의 시각으로 그림을 읽는다. 슬그머니 전시장을 찾는 방 화백은 이런 관람객의 표정을 보며 새로운 감정을 쌓고 돌아간다. 수묵화가 다소 낯설게 다가오는 젊은 세대가 두고 간 설익은 흥분을 마주하는 게 가장 기껍다고 한다.
방의걸은 한국 수묵화를 지켜온 거장이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전남대 미대 교수로 40여 년간 제자를 기르다 정년 퇴임한 그는 구상과 추상의 틀을 벗어난 독창적인 필법을 구축했다. 명상에 잠긴 듯 평화로운 먹의 농담과 역동적인 운필로 자연의 풍광을 담아낸 작품들은 수묵으로 그린 서정시란 평가를 받는다. 지난 5일 전시장에서 마주친 방의걸 역시 이런 평가에 손사래를 치면서도 “화가는 붓으로 시를 표현해내는 사람”이라고 자신의 주관을 드러냈다.
전시에서 드러나는 방의걸의 작품세계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묵묵함’이 핵심이다. 1960년대 전개된 수묵화 운동을 이끌며 한국화의 현대적 확장을 꾀한 또 다른 거목 남천(南天) 송수남(1938∼2013)과 같은 해 태어났지만 밟아온 길은 확연히 다르다. 60년 넘게 화업(畵業)을 이어오면서도 수묵이나 필법에 대한 거창한 이론이나 철학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리고 싶어 그리고 그냥 그린다”는 그는 “삶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상념 속에 끌어내 그림으로 말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방의걸이 추구하는 지점은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다. 서양화 전공으로 미술을 시작했지만 어려운 형편에 물감을 사는 것도 어렵자 먹만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동양화로 전공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대신 살면서 겪는 모든 경험과 감정을 재료로 담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방의걸은 “무수한 반복 속에서 스스로를 다스려갈 때 내공이 쌓이는 것”이라며 “음악을 배우거나 누구와 사랑하고 싸우는 모든 경험이 인격을 형성하고 그림에 쌓인다”고 말했다.
이런 방의걸의 삶의 태도와 작품세계는 동시대적 미감과 맥이 닿는다. 막대기처럼 표현된 산에 앉은 새의 모습이 담긴 ‘여명’이나 숲에 내리는 비의 리듬감이 표현된 ‘소나기’ 등의 작품에선 전통적인 준법에서 벗어난 현대적인 조형미와 즉흥성이 드러난다. 김미선 미술평론가는 “방 화백의 관조는 구상적 묘사와 추상적 사의가 양립한다”며 “전통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요즘 젊은 세대에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수묵화라 해서 고답적인 전통만 생각하고 온 관람객들의 공감을 부르는 현대미술”이라고 했다.
몰입형 미디어전시로 유명한 디스트릭트와 협업한 작품 ‘시간을 담은 빛’도 관람의 묘미 중 하나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삼성동 코엑스 대형 전광판에 선보인 실감 콘텐츠로 유명한 디스트릭트와 함께 지난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산수화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는데, 이를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였다. 전시 관계자는 “전통 수묵화에 뿌리를 뒀지만 젊은 세대도 즐기는 현대적인 산수화란 점에서 국내 작가 중 처음으로 방의걸과 협업한 수묵물결”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 29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명, 피습 뒤 ‘서울행 - 부산팽’ 논란… “총선 100만표 날렸다” 분석도 [허민의 정치카페]
- 강경준 불륜 의혹… “장신영, 큰 충격에 눈물”
- 배우 사강, 갑작스러운 남편상… 슬픔 속 빈소 지켜
- “현근택, 컷오프 대상” 징계논의 문자서 이재명 “너무 심하지 않나”
- [속보]검찰, 文 사위 특혜 채용 의혹 관련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
- 콘서트 보려다 협심증 환자 쓰러졌는데…임영웅이 찬사받은 이유?
- 4억씩 빠진 ‘노도강’…거래 절벽에 매물 쌓인다
- [속보]괌 한국인 관광객 총격 살해 용의자, 숨진 채 발견
- 아침엔 ‘제3지대’ 오후엔 ‘국힘’ 회동… 몸값 뛰는 양향자
- [속보]‘대통령실 진입 시도’ 대진연 10명 구속영장 전원 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