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와 전시기획자 ‘1년간의 교환편지’… 전시예술로 엮다

유승목 기자 2024. 1. 1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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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오선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 앞의 커튼이 오늘 아침 새삼 새로워 보여 담게 됐습니다. (사진을) 동봉하여 보냅니다, 고성 드림."

"앞으로 함께하면서 어떤 신기한 발견을 공유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편지 주셔서 감사해요. 그 덕분에 무척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12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밤에, 홍예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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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리지갤러리 ‘Sincerely,’ 展
고성 작가와 홍예지 큐레이터
예술철학과 소소한 일상 재현

“선생님의 오선지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문 앞의 커튼이 오늘 아침 새삼 새로워 보여 담게 됐습니다. (사진을) 동봉하여 보냅니다, 고성 드림.”

“앞으로 함께하면서 어떤 신기한 발견을 공유하게 될지 기대됩니다. 편지 주셔서 감사해요. 그 덕분에 무척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12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밤에, 홍예지 드림.”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평생 편지를 썼다. 스스로를 “편지를 가장 진솔한 교제 수단으로 생각하는 구식인간”이라고 소개한 그에게 있어 편지는 인간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유대를 통해 고독을 이겨내도록 돕는 풍요의 세상이었다.

손가락만 두드려도 안부를 전할 수 있는 SNS 시대인 요즘, 릴케를 닮은 구식인간 두 사람이 편지를 썼다. 예술이라는 세계에 뛰어들었다는 것 외에 성별, 나이, 사는 곳, 취향까지 닮은 점 없는 이들은 꼬박 1년간 서로의 소식을 알리는 서간(書簡)을 통해 삶의 의미를 공유하고 각자의 작업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서울 서초구 페리지갤러리엔 새해 들어 사진가 고성과 전시기획자 홍예지가 꾸민 ‘Sincerely,’가 열리고 있다. 매년 역량 있는 젊은 작가와 기획자를 한 명씩 선발해 짝을 짓고, 협업 전시를 만드는 페리지 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고성은 실체와 기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진작가로, 미국에서 주로 작업하며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에 작품이 영구소장된 작가다. 홍예지는 서울대 경영학·미학과를 졸업하고 미술비평가와 큐레이터, 독립출판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름 빼고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이들은 곧장 편지를 썼다. 지난 5일 전시장에서 만난 고성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서간집을 떠올렸고 우리도 편지를 나누면 서로를 알아갈 수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년 초겨울에 시작한 대화는 봄과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을 맞이하며 끊임없이 확장돼 40여 통이 쌓였다.

편지엔 고성과 홍예지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고전이나 철학 논문, 시와 산문, 사진 등에서 서로가 생각하는 삶의 본질과 예술론을 전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앎은 무엇인지 고민한다. 이 편지들이 묶인 서간집은 도록이 됐다.

전시에선 이들이 편지를 쓴 서재와 작업실이 재현됐다.(사진) 두 공간의 가운데엔 편지로 얻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상징하는 오브제들이 놓였다. 관람객은 이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두 예술가의 교류로 만들어진 세계를 엿보고 편지를 읽으며 사물의 의미를 추리하게 된다. 고성은 “시작은 둘의 교류지만 제3자와도 연결되는 걸 고민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편지는 현재진행형이다. “사람을 알게 되는 빠른 방법이 그가 머무는 공간에 들어가는 것인 만큼, 실제로 머무는 공간에 가깝게 연출해 만남의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는 홍예지는 “전시 기간에 관람객을 만나면서도 편지를 업데이트할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2월 3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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