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왜 그토록 간절했을까 [프리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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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문자메시지가 왔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내일 공판이 있어 알려드립니다"로 시작한 메시지는 늘 재판 시일과 재판정 장소를 상세히 공유한 다음,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와 같은 인사로 끝맺었다.
가해 운전자에 대한 재판이 열리면서부터는 매번 재판을 방청하며,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에게 관심과 보도를 호소하는 문자메시지를 꼬박꼬박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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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문자메시지가 왔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내일 공판이 있어 알려드립니다”로 시작한 메시지는 늘 재판 시일과 재판정 장소를 상세히 공유한 다음, “많은 관심과 보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와 같은 인사로 끝맺었다. 2023년 1월8일, 1월11일, 3월13일, 3월14일, 4월25일, 5월30일, 6월1일, 7월25일, 9월1일, 9월19일, 11월6일, 11월10일, 11월19일, 11월28일, 11월29일…. 재판이 열리고 끝날 때마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어조는 점점 간절해졌다.
문자의 발신인은 동원이 아버지였다. 아홉 살 이동원 군은 2022년 12월2일 서울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바로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던 차에 부딪혀 세상을 떠났다. 운전자는 만취 상태였다. 사고 발생 후 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인근 자택 주차장까지 운전해 들어갔다가 뒤에 다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어린이보호구역 사고에 음주운전, 뺑소니 의심 사고였다.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는 보행로가 없었다. 차량 일방통행이 추진되었다가 주민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는 도로였다.
동원이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후 1년 동안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언론 인터뷰에 나서고, 관계 기관들에 언북초 인근 교통안전 시설 개선을 요구하며, 지역구 의원실과 함께 ‘동원이법(어린이보호구역 시설·사고 예방 시스템 강화)’ 입법 활동을 벌였다. 가해 운전자에 대한 재판이 열리면서부터는 매번 재판을 방청하며,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에게 관심과 보도를 호소하는 문자메시지를 꼬박꼬박 보내왔다. 그렇게 뛰는 이유는 단 하나, ‘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이었다.
사고 당시 관련 기사를 쓴 나도 그 문자의 수신자가 되었다. 바쁜 일정을 핑계로 재판 방청에 자주 참여하지 못하고 후속 보도를 많이 이어가지 못해 문자를 받을 때마다 죄송했다. 가끔 찾아간 법정에서 본,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는 온갖 증언과 영상과 음성 녹음들을 감당하며 어깨를 떠는 동원이 부모님의 뒷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아팠다. 무엇보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기자로서 뭐라도 하나 제대로 바꾸어내지 못한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2023년 11월24일 가해 운전자의 2심 선고 결과가 나왔다. 징역 5년, 1심에서 나온 징역 7년에서 2년이 깎였다. 뺑소니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고 어린이보호구역 치사와 위험운전 치사 중 더 무거운 죄 하나의 형량만 따져 이중 처벌을 피했다고, 재판부는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2심 선고가 나기 보름 전, 메시지로 공판 일정을 알려온 동원이 아버지에게 추운데 고생하신다고,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동원이 아버지는 다시 답장을 보내왔다. “이제 곧 1년이 되는데 아빠로서 한 게 없어 너무 초라합니다.”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시 답장을 보냈다. “아닙니다. 애 많이 쓰셨고 많은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거기서부터 변화가 시작됩니다. 파이팅입니다.”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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