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한국인] "뉴요커들에게 한식의 깊은 맛을 보여준다"
[편집자주][뉴욕의 한국인]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활약하는 한국인과 한국계 코스모폴리탄들의 분투기를 찾아 고국에 전하겠습니다.
뉴욕타임스(NYT)가 올해 최고의 요리 8선에 선정한 '돼지곰탕'(옥동식)에 대한 언급엔 한국 음식의 정의가 담겼다. 자극적이지 않고 어떤 관점에선는 좀 밋밋하지만 그만큼 거부감 없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음식 본연의 의미를 잘 살린 자양분이란 말이다.
뉴욕에서 불고 있는 K푸드 열풍은 문화적 호기심을 넘어 한국이란 브랜드의 고급화로 이어지고 있다. 1980~90년대 뉴욕에 불었던 일본 음식 열풍은 사실 생선이라는 재료의 협소함으로 인해 '스시' 하나로만 남았다. 하지만 최근 뉴욕으로 건너온 젊은 한인 셰프들이 고급화한 한식은 한정식이란 연속적인 성찬의 규모와 다양성으로 인해 프렌치 코스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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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한식은 이제 그저그런 소수 이민계층의 싸구려 음식이 아니라 오히려 햄버거나 피자 위주의 정크푸드에 질려있는 미국인들의 식생활을 바꿔줄 수준높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치학과 금융을 전공한 후에 신용파생상품을 다루는 은행(미즈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진짜 내 일이 아니란 생각에 몇 년 버티지 못했고 한 상원의원의 선거 캠페인 조직에 들어가 가슴이 가리키는 방향이던 정치에 뛰어들었죠."
이민 2세대로 녹록지 않은 조건에서 정치를 하면서도 그는 2008년 대선에 나섰던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리토론자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변화는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지인으로부터 찾아왔다. 아내와 함께 뉴욕에서 형제처럼 지내던 인척이 위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황망한 마음에 상주 역할을 하면서 살고 죽는 것의 의미를 다시 되새긴 것이다.
특히 더 넓은 땅에서 더 큰 일을 해보겠다고 살면서도 정작 먹고 사는 문제엔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이 크게 다가왔다. 한인마트에서 족히 몇 달은 냉동냉장 상태로 방치됐을 법한 시들고 상한 식재료로 대충 한식과 엇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끼니를 때우는 한국계 이민자들의 처지가 남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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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19년 창업한 김씨마켓은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는 대신 한국산 재료의 산지 이야기와 재배 배경, 명인과 장인들의 음식 철학을 내용물에 자세히 소개하는 전략으로 성장해왔다. 월스트리트 창고에서 시작한 이 사업은 최근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로 옮겨 B2C뿐 아니라 B2B 매출을 늘려가면서 커지고 있다.
창업초기 고추장과 간장, 된장, 참기름, 들기름 등 5가지 제품으로 시작했던 품목은 최근 750가지로 늘었다. 파슨스와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를 졸업한 인재들이 사업 철학에 공감해 합류하면서 직원도 9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산지의 투박한 담음새를 뉴요커들의 흥미를 잡아당길 수 있는 디자인으로 풀어내면서 B2C 매출 비중에선 현지인(65%)이 한인(35%)들을 넘어섰다.
주목할 만한 점은 도매 분야다. 최근 뉴욕 레스토랑 업계에선 한식 파인다이닝들이 연속해 성공하면서 B2B 비중이 늘고 있다. 당초 자사도메인을 통한 개인 판매가 대다수였던 초기와 달리 최근엔 20% 이상의 매출을 식당 공급부문에서 거둬들이고 있다. 팬시푸드쇼에서 각광받은 제품인 '김치 바이츠'는 미국 내 고급 식자재 유통망인 홀푸드마켓(Whole Foods Market)에 입점했다.
특히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미국 뉴욕에서도 음식 전문가들을 통해 팬데믹(세계적 감염병 대유행)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프랑스계 미국인 셰프로 뉴욕, 라스베가스, 런던, 파리, 상하이, 도쿄 등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장 조지(Jean-Georges)도 김씨마켓의 단골 고객이다.
장 조지는 2011년 아내 마르자와 함께 '김치 연대기'라는 한국 음식 여행 주제의 TV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때부터 한국 음식에 푹 빠지면서 최근엔 한국의 최상급 재료를 김씨마켓을 통해 조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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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식재료 외에 전통 소반과 바구니 등을 장인들의 작품으로 현지에 소개하고 있다. 특히 하지훈 작가의 호족반이나 방짜유기와 같은 작품들은 뉴요커들이 그 소박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주문이 시작됐다고 한다.
올해 김씨마켓은 한국산 식재료와 식기 유통 외에 뉴요커를 대상으로 한 한국 프리미엄 여행상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한국을 보고 싶어서 왔다가 공항에 내려서부터 택시 바가지를 쓰고 기껏 명동에서 탕후루나 국적 불명의 길거리 음식들을 먹고 돌아가 안티가 되는 불상사를 막아보자는 의지다.
김 대표는 "미국엔 아베크롬비&캔트와 같은 고급여행 전문기업들이 있지만 한국여행을 그렇게 설계한 회사나 상품은 없어서 돈이 되든 안되든 직접 만들기로 했다"며 "진짜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금수강산 곳곳에 숨은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준식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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