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 총수일가, 워크아웃에 ‘호된 청구서’ 받는 까닭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관점에서 보면…그 중 상당부분이 사실 총수 일가의 재산 증식에 기여했다.”
지난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를 위해 지주사(티와이홀딩스) 보유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며 태영그룹 총수 일가를 몰아붙였다. 이 원장은 9일에는 “(대)주주는 유한책임을 넘어서야 한다”고도 했다.
주식회사 원리상 주주는 지분만큼 부담을 안는 게(유한책임) 정상이다. 채권자가 채권액만큼 부담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이런 점에서 태영건설과 직접적 연결이 없는 총수의 사재 출연과 방송사 지분 담보 제공은 과도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채권단이 총수 일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까닭은 뭘까. 태영그룹 지배구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익 사유화를 강조한 까닭
태영그룹은 2020년 전과 후의 지배구조가 확연히 다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지배구조 개편이 이뤄졌다. 개편 결과 총수 일가는 그룹 지배력을 더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동시에 수익을 더 많이 빼갈 수 있게 됐다.
2020년 전 태영그룹은 태영건설을 정점으로 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었다. 태영인더스트리와 부동산 사업장 법인외에도 에스비에스(SBS)를 포함한 방송계열사도 태영건설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하지만 2020년 9월 태영그룹은 태영건설을 인적분할해 존속 사업회사(태영건설)와 신설 투자사업부문으로 쪼갠 뒤 지주회사 체제로 바뀐다. 신설 투자사업부문이자 지배구조의 정점에 지주사 티와이홀딩스가 서게 된 셈이다.
이를 통해 총수 일가는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했고, 태영건설에 대해서도 현물출자와 증자 등을 통해 지배력을 더 확장했다. 태영건설이 번 수익을 총수 일가가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수취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는 뜻이다. 반면 옛 태영건설 소액주주들로서는 지분 희석 등으로 이익배분 몫은 줄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에 “태영 총수 일가가 지주회사를 만들면서 (태영건설 등 계열사로부터 나오는) 이익은 사유화해 놓고 손실은 지금 워크아웃 국면에서 한 푼도 스스로 감당 않고 (오히려 채권단과 사회에) 공유화하겠다는 발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당국자의 ‘이익 사유화’ 지적은 지난 3년간 티와이홀딩스와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 행태를 염두에 둘 때, 외환위기 이후에 있었던 여러 다른 워크아웃 사례에 견줘 이번에 태영 총수 일가는 ‘더 많은 고통 책임’을 져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방송사 지분 요구와 담보 제공 논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총수 일가가 얻은 또다른 과실은 에스비에스를 포함한 방송 계열사를 좀더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지주사 개편 전에는 태영건설과 방송계열사는 모-자 관계인 터라 건설의 부실은 방송계열사의 지배력 약화로 곧장 이어지나 개편 후에는 두 법인이 사촌 관계가 되어 곧장 부실 전이가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는 지주사(티와이홀딩스)가 에스비에스, 에스비에스미디어넷, 에스비에스네오파트너스를 지배하고, 각 방송 계열사마다 다수의 자회사를 두고 있다. 지배구조 내에서 태영건설과는 어떤 얽힘도 없는 셈이다. 2020년 전만 해도 당시 방송계열사의 중간지주사 격인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의 대주주는 태영건설(지분율 61.2%)이었다.
이런 까닭에 지주사가 태영인더스트리 매각 대금을 태영건설에 넣지 않고 지주사 채무 상환에 쓴 점을 놓고 채권단이 ‘태영 건설 꼬리자르기’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며 동시에 채권단 일부가 “공공성 강한 방송사를 소유한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라며 여론전을 펼친 것도 방송사 지분을 요구할 마땅한 경제적 압박 수단이 없어서였다.
태영그룹 총수 일가가 9일 방송사 지분도 채권단에게 담보로 제공키로 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된 듯하지만 또다른 분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자칫 방송사가 채권단의 입김에 휘둘리며 방송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말 태영그룹이 에스비에스미디어넷 지분을 담보로 760억원의 자금 차입에 나서자 내부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에스비에스미디어넷 노동조합은 지난 4일 성명을 내어 “SBS미디어넷이 일방적 손해일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태영건설 지원을 위한 것이라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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