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끝을 마주하는 도시
새해 첫날 부터 일본 노토반도에서 규모 7.6의 지진이 발생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일본 역사상 진도 7을 관측한 지진으로는 7번째라고 하니 예삿일은 아니었다. 필자는 연말 일본여행을 마치고 귀국비행기에 오르면서 이 소식을 전해들어 충격이 더 컸다. 비록 일본 본토가 아닌 오키나와섬이었지만, 여행 중 오키나와의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슈리성을 인상 깊게 돌아본 터여서 많은 상념에 빠지게 했다.
슈리성은 오키나와의 나하시에 자리한 옛 류큐왕국의 왕궁으로 오키나와에서 가장 화려한 유적지이자, 일본 본토나 같은 문화권에 속한 한국과 중국의 것과도 미묘하게 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장소이다. 13세기에 건축됐다고 알려져 있는 슈리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뉴멕시코급 전함 USS 미시시피의 포탄 세례를 맞고, 류큐왕국의 문화재들과 함께 소실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2000년에 슈리성의 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으며, 1989년 시작해 2019년에 마무리된 30여 년의 복원 공사를 통해 과거의 위용을 되찾았었다. 하지만 2019년 10월 31일 대형화재에 휘말려 슈리성의 주요한 건축물들은 복원 완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대부분 전소되는 비극을 맞이한다. 기구한 운명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 슈리성을 찾아간 이유는 대화재 이후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 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직접 마주한 슈리성은 기사로 접하며 상상한 것 보다 훨씬 차분하고 정돈된 일상적 풍경을 자아내었다. 슈리성은 본격적인 복구 작업에 돌입했으며, 슈리성 전역에 화재 당시의 상황과 이후의 대처 과정을 세심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슈리성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왕궁의 정전 (正殿) '세이덴'을 복원하는 공사 모습 자체를 방문객들에게 공개하고 전시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키나와의 목재를 가공해 지역의 장인들이 힘을 모아 상징적 성역을 재건하는 과정 그 자체를 귀중한 건축 교육과 공동체 결속의 기회로 삼는 모습이었다. 전시내용물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니 오키나와 사람들이 얼마나 정성들여 새로운 정전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지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우리도 얼마 전 이와 유사한 사건을 겪었다. 2008년에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에 의해 부분 소실되고, 2013년 복구된 바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 화재 사건으로 인한 손실과 이를 복원하기 위한 건축적 노력과 의미에 대해 시민들과 소통된 바가 얼마나 있었는지 떠올려보며, 우리가 지니고 있는 건축의 문화적 토양에 대해 되돌아보기도 했다.
노토반도 지진으로 인해 초토화된 마을의 뉴스 영상과 슈리성에 전시된 화재로 잿더미가 된 왕궁의 사진을 며칠 간격으로 마주하며, 재난이 일상화된 일본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과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일본이 세계 현대건축의 최전선에 서게 된 계기 중 하나는 1960년대 초 일본의 건축가들에 의해 주창된 '메타볼리즘(Metabolism)'이라는 건축이론의 정립이다. 이는 근대 이후 유럽과 미국이 아닌 동양에서 현대 건축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최초의 사례이며, 아직까지 이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친 사건은 없었다. '메타볼리즘'은 '신진대사'라는 그 사전적 의미와 같이 건축과 도시를 물리적으로 고정된 영구적 구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시스템을 지닌 생명체와 같은 것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이다. 단게 겐조가 도쿄를 바다로 확장시키는 체계를 구상한 '도쿄계획(1960)'이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며, 이 외에도 키쿠다케 키요노리, 마키 후미히코, 키쇼 쿠로카와 등의 저명한 일본 건축가들이 함께 했다. 건축을 영원성을 지향하는 구조물로 보는 종래의 사고방식과 다르게 일시적이고 변화를 지향하며, 결국 소멸하고 재탄생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메타볼리즘'의 견해는 재난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일본의 운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끝과 새로운 시작을 일상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탄생한 도시와 건축의 지혜일지도 모르겠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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