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농구인생 제 2막 ③ ‘농구에 진심인 의사’ 김진수 원장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점프볼 독자들을 위해 인사 부탁합니다.
농구를 좋아하는 의사입니다. 고2 때부터 농구를 좋아해서 공부와 농구만 했습니다. 30대 중반까지는 농구에 미쳤었는데(웃음),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조금 덜 미쳤습니다.
어떻게 농구에 미치게 됐는지(웃음)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 처음 농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체육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체육관으로 오래요. 체육 선생님은 무섭잖아요. 체육관에 갔습니다. 내일도 또 오래요. 계속 불러서 계속 갔습니다(웃음). 농구부가 있는 학교였는데, 제 키가 크니까 농구부에 넣은 거죠. 집에 매일 늦게 들어오니까 어머니가 물어보세요. 사실대로 말씀드렸죠. 어머니가 농구를 못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그때는 농구가 뭔지도 몰라서 좋았어요. 어머니가 구출해 주신거죠.(웃음)
농구부였는데 농구에 미치지는 않았군요.
농구를 몰랐으니까요. 오라고 하니까 갔고, 뛰라고 하니까 뛰었습니다. 재미가 없었어요. 농구에 미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체육 시간에 농구공과 축구공을 주고 좋아하는 운동을 하라고 했어요. 축구보다 농구가 좋더라고요. 친한 친구들도 농구를 더 좋아했고요. 그때부터 30대 중반까지 농구 동호회를 쉰 적이 없습니다. 군의관으로 복무할 때는 농구를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나서서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농구에 빠진 이유가 뭘까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어요?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친구들과 같이해서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키는 큰데 기술이 없어서 리바운드만 했죠. 그래도 좋았어요. 하다 보니 점프슛도 쏠 줄 알게 되고, 또 들어가기도 했고요. 게임을 하면 많이 이겼는데, 그 재미도 쏠쏠했던 것 같아요. 군의관을 육군 수도병원에서 했는데, 취미가 농구심판과 축구심판이었어요. 명지대 농구 코칭 아카데미도 다녔네요. 농구가 좋아서 심판과 코칭도 배웠습니다.
고2면 수험생이잖아요. 의대도 공부량이 많고.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그냥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농구만 했죠. 제 생활이 공부와 농구 둘이었어요. 하루에 몇 시간씩 농구를 하니까 공부는 언제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농구를 하면서 체력이 좋아진 것도 있겠죠. 새벽까지 공부하려면 체력도 중요하잖아요.
농구선수 치료도 농구가 좋아서 선택했어요?
제 스승님이 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이경태 교수님이에요. 운동선수 환자들이 많았죠. 환자가 너무 많으면 제가 진료를 봤습니다. 교수님이 좋아하는 종목은 축구와 발레에요. 농구는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부상의 빈도가 높고 큰 부상도 많아요. 발목이 아파서 왔는데 무릎이나 허리 등 여러 부위가 안 좋은 경우도 많고요. 농구선수는 점프를 많이 하잖아요. 덩치가 큰데 자기 무게를 고스란히 받으면서 착지하니 부담이 됩니다.
SK 팀닥터로 선수들을 만나고 있어요. 그것도 농구를 하는 것만큼 좋을 것 같은데요.
좋죠. SK 라커룸 분위기가 자유롭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자유롭게 해요. 경기 시작 전에 전희철 감독이 “최 감독(최원혁)이 얘기해봐”라고 얘기합니다. 긴장을 풀기 위해 최원혁 선수에게 전날 준비한 것들을 얘기하라고 하는거죠. 사실 경기 준비는 라커룸에 오기 전에 이미 다 합니다. 경기 전에는 준비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는 정도예요. 전 감독님도 최 감독이 얘기할 때(웃음) 간간이 포인트만 짚어줍니다.
축구는 하프타임에 라커룸에 들어가는데 농구는 못 들어가요. 감독과 코치, 선수만 들어갑니다. 축구는 한번 교체되면 다시 못 들어가니까 전반 끝나면 몸 상태를 확인해요. 그런데 농구는 교체가 자유롭잖아요. 굳이 라커룸에 들어갈 이유가 없는 거죠. 그래도 분위기는 압니다. 경기내용이 안 좋으면 감독님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리기도 해요.(웃음) 대신 경기에 져도 끝나면 총평이 없어요. 경기는 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죠. 평가는 내일을 준비하는 거니까, 몸 상태 점검하고 빨리 쉬러 가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전희철 감독님을 높이 평가해요.
SK 선수들 몸 상태는 어때요. 오세근이나 김선형 같은 주축 선수들이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오세근 선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아킬레스건과 무릎에 문제가 있어서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때도 많이 고생했어요. 현재는 휴식과 재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팀에서는 시간이 걸려도 건강하게 회복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김선형 선수도 부상이 있었어요. 국가대표팀 합류 전에 종아리 근육을 다쳤고,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 때도 부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처럼 몸을 만들기가 어려웠죠.
대표팀 단골 선수들은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있을 것 같아요.
시즌을 치르면 크고 작은 부상이 있죠.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데 대표팀에 발탁되면 그 시간이 부족해요. 그러니 계속 쌓이기만 합니다. KCC 이승현도 지금 뛰면 발목이 아플 거예요. 제가 수술을 했는데, 재활 훈련을 제대로 못 했어요. 워낙 책임감이 강한 선수라 뛰려고 하겠지만 의사의 소견으로는 재활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직접 수술한 농구선수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김선형, 오세근, 이승현 모두 제가 수술했죠. SK의 허일영, 최부경, 최원혁 선수도 수술했고요. 정확한 숫자는 기록을 확인해야겠지만 농구선수만 1000명 이상 진료했고 수술한 선수도 많습니다. 양구에 KBL 캠프에 갔는데 김윤태(은퇴) 선수가 코치로 왔어요. 제 첫 수술 환자를 거기에서 만났습니다(웃음).
SK에 수술한 선수가 많네요. 수술하지 않은 선수가 더 적을 것 같습니다.
주축 선수는 거의 다 수술했다고 봐야죠. 워니 정도가 안 했으려나…. 오재현 선수도 안 했네요.(웃음) 농구는 랜딩, 즉 점프했다 떨어질 때 부상이 제일 많습니다. 과도한 운동도 부상의 원인이 되죠. 아킬레스건염이나 족저근막염 같은 부상은 대체로 몸을 무리하게 사용해서 오는 부상입니다.
그런 얘기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탑 클래스의 선수들은 부상을 많이 입지 않아요. 큰 부상도 적고요. 근골이 튼튼한 선수도 있겠지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국내 선수들 부상은 과도한 운동량이나 무리한 동작, 훈련이 부상을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포츠 강국의 특징은 아니에요. 중진국이나 후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농구는 점프를 많이 하고 착지할 때 온몸의 하중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죠. 저는 착지할 때 절대 한 발로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온몸의 무게를 발 하나로 지탱하면 무리가 오죠. 특히 근력이 약한 여자들은 십자인대가 잘 끊어집니다. 두 발로 착지해야 돼요. 훈련 방법도 중요합니다. 산이나 계단을 달리는 것이 운동 효과가 있어요. 그런데 다른 운동으로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는 마스크를 쓰고 달리기가 있습니다. 트레드밀(Treadmill: 실내에서 달리기와 걷기를 위한 운동 기구로 흔히 러닝 머신으로 부르지만 잘못된 말이다.)이나 슬링(sling: 흔들리는 줄을 이용한 운동으로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근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같이 필요한 근육만 키우는 운동이 있어요. 손흥민이나 박찬호가 한국에서 운동을 했으면 어땠을까요. 더 어린 나이에 수술을 하지 않았을까요. 축구는 피지컬이나 메디컬 시스템이 국내도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그런 시스템을 농구에도 가져오고 싶어요.
치료보다 재활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하셨던 선수들도 치료보다 재활이 문제였고요.
반반이죠. 수술이 끝난 선수에게 항상 해주는 얘기예요. 치료가 반이고 재활이 반이죠. 물론 재활을 잘했는데 다른 부상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정효근(안양 정관장) 선수가 그랬죠. 상무 시절 제가 수술을 했는데 결과도 좋았고 재활도 잘했어요. 그런데 다른 부상이 와서 안타까웠죠. 그런데 김선형이나 이승현(부산 KCC) 선수 같은 사례가 훨씬 더 많아요. 재활 기간에 무리하게 훈련을 하거나 경기를 뛰는 거죠.
혹시 SK 선수와 다른 구단 선수를 차별하지는 않으시겠죠.(웃음)
SK는 더 잘 봐야죠.(웃음) 다른 구단 선수들도 많이 와요. 제가 수술했던 선수들도 많고요. 농구는 SK 팬이지만, 의사로서는 응원 팀이나 선수가 없습니다.
기억에 남는 선수가 있나요?
많죠. 하승진 선수는 을지병원에 있을 때 봤습니다. 키가 커서 고개를 잔뜩 숙이고 들어와야 해요. 그래서 여기는 하승진도 들어올 수 있는 높이로 문을 만들었습니다.(웃음) 허웅과 허훈은 우애가 정말 좋아요. 형이 병원에 올 때는 동생이, 동생이 병원에 올 때는 형이 운전해서 같이 옵니다. 와서는 티격태격하죠.(웃음)
우리나라에서 농구선수 치료를 제가 제일 많이 했을 것 같은데요. 수술을 저보다 많이 한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농구를 직접 하니까 어떤 동작에서 어느 부위에 부상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몸이 이런 상태면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도 많이 알겠죠.
그런 원장님도 부상 경험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발목을 네 번 크게 다쳤습니다. 세 번째 다쳤을 때 수술을 했죠. 농구를 못하겠으니까…. A2DX라고 스테픈 커리가 쓰는 보조기를 차고 농구를 했어요. 그런데 너무 답답해요. 수술 후에 주사는 다른 원장님에게 받고 재활은 스스로 했습니다. 기구는 병원에 많으니까요. 의사라서 좋은 점이네요(웃음).
들어오면서 보니 재활 센터가 있는 것 같았어요.
재활 센터만은 아니고요…. 부상이나 다른 원인으로 인해 감소한 경기력을 복귀시키기 위한 최적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선수에게 맞는 맞춤형 치료를 위해 SPC(Sports Performance Center)를 만들었습니다. 선수의 목표는 일상생활로 복귀가 아니에요. 강도 높은 훈련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기에 복귀해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줘야죠.
대한민국농구협회 의무위원장입니다. 대표팀 관리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대표팀을 보면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필리핀은 대회에 의사가 함께 옵니다. 일본도 그렇고요. 우리는 힘들어요. 대회를 하면 일주일 이상 병원을 비워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내년에는 매 대회 의사를 파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11명의 의사가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더 많은 의사를 참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외국에 나가면 팀 닥터가 정말 필요해요.
협회에 계시니 한국농구에 대해 느끼는 점도 많을 것 같습니다.
한국농구가 퇴보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주 듣습니다. 그 책임이 농구협회에 있다는 여론이 팽배하고요. 그런데 협회만의 잘못일까요? 농구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이 생각해볼 문제 아닐까요? 기자든, 선수든, 프런트든 농구 발전을 위해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겠죠. 협회에 있어 보니 회장의 역할은 한계가 있습니다.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해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청소년 운동량 꼴찌입니다. 벌써 4~5년이 됐어요. 학생 한 명이 운동 하나를 무조건 해야 하는 일본과 비교가 되죠. 협회나 관계자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정책이 받쳐줘야 합니다.
김진수 원장과 인터뷰하면서 생각보다 한국농구의 미래가 어둡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농구에 진심인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재미있으면 팬들은 체육관을 찾습니다. 각종 커뮤니티에 많은 글이 올라옵니다.
최근 대학 농구를 보러 오는 젊은 여성 팬들이 있습니다. 김 원장이 말하는 정책은 ‘젊은 여성 팬’들과 관계가 있습니다. 유소년, 청소년 시기부터 농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 잠깐 농구 교실에 다니다 공부를 위해 운동을 멀리하는 지금의 교육으로는 대부분의 스포츠가 위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학업에는 도움이 될까요?
김 원장은 한 기고문에서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건 옛말! 이제 몸을 쓰지 않으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존 레이티(John J. Ratey) 하버드대 교수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것은 본인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새벽 1시 반까지 자율학습을 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 농구로 체력과 집중력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해소했습니다. 의대에 다닐 때는 농구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팀의 에이스였고, 책임감과 자신감을 키웠습니다.
학교에는 공부하는 학생 선수가 있고, 운동하는 학생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로 사고력을 키우고, 운동으로 체력과 집중력을 키우는 것에 학생과 학생 선수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농구를 비롯한 한국스포츠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스포츠 선진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렇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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