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이정현이 계보 잇는다’ KBL 지배한 국내 스코어러는?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됐으며 기록은 1월 9일 기준, 순서는 통산 득점 순이라는 점을 알립니다.
서장훈_시대를 앞서 나갔다…3점슛 던지는 빅맨
통산 1만 3231점(전체 1위) 평균 19.2점(국내 1위)
빅맨이지만 평균 1.8개의 3점슛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공격루트를 보여줬다. 서장훈이 데뷔할 당시는 스트레치4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시대를 앞서 나간 빅맨이었던 셈이다. 서장훈은 데뷔시즌에 25.4점을 기록하는 등 2004-2005시즌까지 7시즌 연속 평균 20점 이상을 작성했다. 이 기간 동안 손가락 부상으로 24경기만 뛴 2000-2001시즌을 제외하면, 전체 득점 순위에서 한 번도 TOP10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포지션 특성상 외국선수들과 꾸준히 몸싸움하며 쌓았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숫자 이상의 가치가 있는 기록이다.
자유계약제가 도입돼 보다 수준 높은 외국선수들이 유입된 2005-2006시즌에 처음으로 20점 미만(19.7점)에 그쳤지만, 창원 LG에서 부침을 겪었던 2011-2012시즌(7.5점)을 제외한 전 시즌 평균 두 자리 득점을 올리며 커리어를 마쳤다.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통산 1만 3231점으로 여전히 1위에 올라있다. 서장훈 역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또한 688경기에서 평균 19.2점을 기록했고, 이 역시 국내선수 가운데 가장 높다.
통산 1만 288점(전체 4위) 평균 13.9점(국내 8위)
‘김주성을 스코어러의 범주로 봐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전무후무한 통산 블록슛 1037개, 우수수비상 2회, 수비 5걸 5회 등 뛰어난 수비력을 지닌 ‘동부산성’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무리도 아니지만, 김주성은 공격으로도 경기를 지배했던 선수다. 신장(205cm)과 기동력을 겸비, 속공 트레일러 역할까지 소화하며 코트 곳곳에서 존재감을 남겼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슛 거리를 늘린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동부산성’을 구축할 당시 중거리슛은 김주성이 보유한 최고의 무기 가운데 하나였으며, 말년에는 3점슛에도 눈을 떴다. 데뷔 후 3시즌은 총 6개 시도에 불과했지만, 은퇴 전 3시즌은 133경기에서 평균 3.1개를 던져 성공률 38.4%(158/411)를 기록했다. 26경기 출전에 그쳐 공식 순위에 들진 못했지만, 2015-2016시즌 3점슛 성공률은 48.5%(32/66)에 달했다. 국내선수 가운데 서장훈에 이은 통산 득점 2위다.
통산 1만 19점(전체 5위) 평균 13.6점(국내 11위)
현역 시절 별명이 ‘소리 없이 강한 남자’였다. 화려한 개인기나 탄력을 지녔던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노련하게 수비를 공략할 줄 아는 베테랑이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포스트업, 뱅크슛으로 마무리하는 페이드어웨이슛은 추승균의 전매특허였다. 데뷔 후 15시즌을 치르는 동안 13차례 평균 두 자리 득점을 기록하는 등 현대 왕조의 핵심 전력이었다. 통산 2점슛(53.8%), 3점슛(37.7%), 자유투(86.6%) 성공률도 안정적이었다.
추승균 역시 김주성처럼 공수를 겸비한 포워드였다. 통산 6차례 수비 5걸에 선정되는 등 전성기를 함께한 이상민과 조성원이 KCC의 공격을 이끌었다면, 추승균은 공수를 겸비한 살림꾼이었다. 애런 헤인즈, 라건아, 김주성에 밀려 통산 득점은 5위로 내려앉았지만, 서장훈에 이어 1만 득점을 돌파한 역대 2번째 선수다. KCC 역사상 국내선수 1경기 최다득점 2위(2006.10.21vs SK 38점)에도 올라있다. 1위는 표명일의 40점이다.
통산 9347점(전체 6위) 평균 15.3점(국내 3위)
3점슛에 있어선 독보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통산 1669개로 1위에 올라있으며, 2위 주희정(1152개)과 517개나 차이가 난다. 현역 최고의 슈터 전성현(소노)은 386경기에서 815개를 성공했다. 쉽게 말해 전성현이 지금까지 성공한 3점슛만큼 더 넣어도 문경은을 넘어설 수 없다. 문경은의 3점슛은 폭발적이면서도 안정적이었다. 4226개를 시도해 성공률 39.5%를 기록했다.
스크린을 받은 후 슛 찬스를 만드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으며, 슛 밸런스 역시 역대 최고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제대 후 치른 1997-1998시즌에 평균 25점을 기록, 득점 TOP10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국내선수였다. 막판 3시즌 출전시간이 평균 20분 미만으로 줄어 기록도 깎였지만, 여전히 610경기 평균 15.3점으로 국내선수 3위에 올라있다. KBL 출범 후 기준, 뱅크슛으로 시도하는 ‘K-자유투’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2008-2009시즌에 기록한 자유투 성공률 94.6%는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는 시즌 기록이다.
통산 8417점(전체 8위) 평균 15.2점(국내 4위)
2009 귀화혼혈 드래프트를 통해 KBL에 데뷔했다. 전태풍-이승준에 이어 3순위로 LG에 지명됐지만 역대 귀화혼혈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득점, 가장 높은 평균 득점을 남기며 은퇴했다. 2009-2010시즌에는 의미 있는 기록도 남겼다. 평균 21.9점을 기록, 제스퍼 존슨(19.5점)을 제치고 전체 득점 1위를 차지했다. KBL 출범 후 국내선수로 등록된 선수가 달성한 최초이자 유일한 득점 1위다.
중거리슛과 돌파가 주된 공격루트였으며, LG 팬들 사이에서는 ‘문코비’라 불리기도 했다. 모비스(현 현대모비스) 시절 유재학 감독에게 각서를 썼을 정도로 종종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게 단점이었지만, 2013-2014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가치를 증명했다. 6경기 평균 22.2점으로 활약, 모비스에 통산 5번째 우승을 안기며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다. 이 역시 귀화혼혈선수로는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플레이오프 MVP 다.
통산 7889점(전체 9위) 평균 12.9점(국내 19위)
전체 10위이자 현역 가운데 통산 득점 1위며, 2023-2024시즌 막판에는 역대 8호 통산 8000점을 돌파할 가능성이 높다. ‘금강불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이정현의 가장 큰 장점은 내구성과 꾸준함이다. 데뷔 후 결장 없이 604경기를 연속으로 출전한 것은 물론, 매 시즌 평균 1개 이상의 3점슛을 기록했다. 통산 3점슛은 1043개로 김병철과 공동 4위며, 산술적으로 2시즌 내에 2위까지 올라설 수 있다.
공격루트가 3점슛에 국한됐던 것도 아니다. 외국선수와의 2대2를 즐겨 구사하는 것은 물론, 1대1 능력 역시 준수했다. 안양 KGC(현 정관장)에 창단 첫 통합우승을 안긴 2016-2017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의 ‘더 샷’은 이정현의 커리어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함지훈, 주희정, 김주성에 이어 식스맨상, MVP 모두 수상한 경험이 있는 역대 4번째 사례다.
통산 7364점(전체 12위) 평균 13.3점(국내 14위)
돌파, 속공 전개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드다. 2011-2012시즌 데뷔, 발목부상으로 9경기(평균 8.2점)에 그친 2017-2018시즌을 제외한 12시즌 모두 평균 두 자리 득점을 기록했다. 데뷔 12년 차인 2022-2023시즌에 커리어하이(16.3점)를 만드는 등 여전히 KBL을 대표하는 스코어러로 활약하고 있다. 데뷔 초기 약점으로 지적됐던 3점슛도 자세 교정을 통해 강점으로 만들었다. 2015-2016시즌에 45.8%를 기록, 3점슛 성공률 1위에 올랐다.
현역 가운데 통산 득점은 이정현-함지훈(7836점)에 이어 3위다. 폭발력도 지녔다. 2019년 1월 5일 부산 KT(현 수원 KT)와의 홈경기에서 국내선수 1경기 공동 3위인 49점을 터뜨렸다. 이른바 ‘밀어주기’를 제외하면 김영만과 공동 1위다. 2023년 1월 28일 대구 한국가스공사를 상대로는 47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1경기 47점 이상을 2차례 경험해본 유일한 국내선수다.
통산 5402점(전체 18위) 평균 14.8점(국내 5위)
문태종보다 먼저 ‘4쿼터의 사나이’라 불렸던 스코어러다. 그만큼 승부처에 강한 슈터였다. 실제 조성원은 정규리그(4점), 플레이오프(4.6점) 모두 쿼터별 득점 가운데 4쿼터 득점이 가장 높았다. 특히 챔피언결정전에서는 15.5점 가운데 32.3%인 5점을 4쿼터에 기록했다.
‘4쿼터의 사나이’ 이전까지 불렸던 별명은 ‘캥거루 슈터’다. 신장은 180cm에 불과했지만, 그만큼 뛰어난 탄력을 지녀 타점 높은 3점슛과 더블클러치 등으로 팀 공격을 이끌었다. LG로 이적, 데뷔 후 처음 1옵션 역할을 맡은 2000-2001시즌에는 평균 25.7점을 올리며 정규리그 MVP로 선정됐다. 이는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는 국내선수의 한 시즌 최고 기록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만 35세에 은퇴해 통산 3점슛(1002개)은 8위지만, 평균 성공(2.3개)은 4위다.
통산 5390점(전체 25위) 평균 9.8점(국내 56위)
KBO리그에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가 있다면, KBL에는 조성민이 있었다. 2014년 대표팀에서 뛰어난 3점슛 능력을 보여주며 ‘조선의 슈터’란 별명을 얻었다. 조성민은 대기만성형이었다. 신인 시절 평균 15분 11초 동안 3.6점에 그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후 입대해 전역 이후 커리어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줬다. 실제 조성민은 제대한 2009-2010시즌 전창진 신임 감독을 만난 후 리그를 대표하는 슈터로 성장했다.
3점슛 1위에 오른 적은 없지만, 2012-2013시즌과 2013-2014시즌에는 1옵션을 맡은 가운데에도 45% 이상의 성공률을 기록하는 등 순도 높은 3점슛을 보여줬다. 문경은처럼 3점슛도, 자유투도 안정적인 슈터였다. 통산 자유투 성공률은 89.1%에 달하며, KT 시절 자유투 연속 성공 기록(56개)도 수립했다. 부상으로 인해 막판 4시즌 연속 8점 미만에 그쳐 평균 득점이 크게 떨어졌지만, 임팩트라는 측면에선 KBL 출범 후 열 손가락 안에 꼽히기에 충분한 슈터였다.
통산 2888점(전체 111위) 평균 17.5점(국내 2위)
KBL 팬들에겐 애증의 존재 아닐까. 통산 득점은 111위에 불과하지만, 국내선수 평균 득점은 서장훈에 이은 2위다. 그만큼 다재다능한 스코어러였다. 슛 거리를 가리지 않고 과감한 3점슛을 즐기는가 하면, 탄탄한 체격을 바탕으로 외국선수들과의 1대1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2006-2007시즌부터 2008-2009시즌에 이르기까지 KBL 최초의 3시즌 연속 3점슛 성공 1위에 올랐다.
통산 3점슛 성공률은 38.7%며, 2007-2008시즌에 커리어하이인 22.1점을 기록하며 SK를 5시즌 만의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2004-2005시즌 서장훈 이후 최초의 국내선수 평균 20점이며, 이후 문태영을 제외한 순수 토종선수 가운데 평균 20점을 기록한 이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방성윤은 코트에 있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위력적인 공격력을 뽐냈지만, 잦은 부상으로 코트에 없을 때도 많았다는 게 문제였다. 미국무대 도전으로 자리를 비웠을 때를 제외하면, SK는 방성윤 영입 후 320경기를 치렀다. 방성윤은 이 가운데 165경기를 뛰었고, 155경기에 결장했다. 방성윤은 부상에 지쳐 29세에 은퇴했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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