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커머스 2024]⑤ 욕설 방송에도 사과하면 끝... 규제 사각지대
현실적으로 심의·규제 어려워... 규제 강한 TV홈쇼핑과 형평성 논란도
전문가들 “소비자 보호·공정 거래 차원의 사후 규제 마련해야”
“이씨 왜 또 여행이야 XX. 나 놀러가려고 했는데.”
지난해 1월 한 TV 홈쇼핑 생방송에서 유명 쇼호스트가 욕설을 해 논란이 됐다. 자신이 판매하는 화장품이 매진됐지만, 뒷 방송이 시간이 정해진 여행 상품 방송이라 일찍 종료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해당 홈쇼핑은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법적 제재인 ‘경고’를 받았고, 물의를 일으킨 쇼호스트도 출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쇼호스트는 이후 타 홈쇼핑사를 통해 복귀를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사실상 업계에서 퇴출된 것이다.
특정 상품 가격을 흥정하는 내용의 유튜브 콘텐츠 커머스 ‘네고왕’은 지난 2022년 한 명품 플랫폼과의 콘텐츠에서 “싼 티 난다” “미친 XX 아니냐”라는 등의 출연자 발언을 그대로 송출해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다음 방송에서 진행자가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콘텐츠 커머스가 부상하면서 진행자들의 부적절한 언어 사용이나 과장 광고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들어 개인 방송 간 경쟁 심화로 재미와 자극을 추구하는 방송이 늘면서 이 같은 문제는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TV 방송 및 홈쇼핑과 달리 개인 방송 채널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커머스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늘어나는 콘텐츠 커머스... 소비자 보호 장치는 ‘無’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미디어(SNS)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콘텐츠 커머스는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홈쇼핑처럼 영상에서 진행자가 상품을 간접광고(PPL)하고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은 유사하지만, 소비자 보호 장치 측면에선 차이가 있다.
TV 방송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규율을 받는 면허 사업이지만, 유튜브 등 인터넷 개인 방송은 방송이 아닌 정보통신으로 분류하기에 규제를 받지 않는다. 누구나 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할 수 있지만, 심의나 규제, 소비자 보호 책임 등에서 자유롭다 보니 피해 발생도 빈번하다.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과 화장품을 광고·판매하는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 84명의 계정을 단속한 결과, 54명의 계정에서 허위·과대 광고 등 불법 행위가 확인됐다. 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올라온 점검 대상 식품 및 화장품 광고 및 판매 게시물 383개 중 232건이 부당 광고로 나타났다.
이런 문제는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급성장한 라이브커머스(방송판매) 시장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온라인 상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쇼핑할 수 있는 라이브커머스 역시 별 다른 규제가 없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통신망에서 이뤄져 방송법을 적용하기 어렵고, 일회성 판매라 전자상거래법으로 규제하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여전히 소비자 피해가 노출된 상황이다. 실제 지난달 서울시가 소비자단체와 12개 주요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에서 방송된 224건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43건의 법률 위반 소지를 발견했다.
◇노골적 광고 추천에 피로감... 알고리즘 피하는 소비자도
콘텐츠 커머스가 범람하면서 소비자들의 피로도도 커지고 있다. 해외에선 의도적으로 알고리즘을 피하는 ‘안티 알고리즘’ 트렌드나 인플루언서가 권하는 물건을 사지 말라고 권유하는 ‘디인플루언싱(Deinfluencing)’ 운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잘파세대(Z+Alpha Generation)의 경우 ‘추천 당하는’ 것에 반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18~39세 소비자 중 43%가 구글 검색 시 익명 모드를 사용했다.
‘앞광고’임을 밝힌 콘텐츠라 할지라도, 노골적인 광고 콘텐츠가 반복되면 거부감이 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콘텐츠학회에 게재된 ‘밀레니얼 소비자들의 뒷광고 및 앞광고 관점에 대한 탐험적 연구’에 따르면 밀레니얼(1980~1994년 출생) 소비자들은 앞광고에 대해 “솔직하고 당당한 접근”이라는 반응과 함께 “광고를 보는 건 선택인데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는 의견이 공존했다.
작위적인 유머를 사용하고 드러내 놓고 과장하는 식의 앞광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도 있었다. 콘텐츠 커머스의 지속 성장을 위해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플랫폼·제조·판매사 공동 책임지는 ‘사후 규제’ 필요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으로 콘텐츠 커머스를 규제하기 보다는 사후 규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콘텐츠 시장이 방대하고, 산업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고 있어 사전에 콘텐츠를 심의하거나 규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는 “소비자 보호와 공정 거래 측면에서 문제 발생 시 해결할 수 있는 사후 규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며 “거래를 중계하는 플랫폼과 제조 판매자들이 연대 책임질 수 있는 징벌적 과징금 제도를 만드는 게 적절하다”라고 했다.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이 유튜브 콘텐츠보다 호응을 얻지 못하는 현실을 들어 소비 트렌드에 맞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전 규제로 유튜브가 지상파처럼 재미 없어지면, 소비자는 또 다른 채널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설명이다.
그는 “채널 운영자인 개인 창작자도 수익 모델이 있어어야 하는데 규제를 하는 건 순환 시스템을 막고, 자칫 좋은 콘텐츠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라며 “획일적으로 규제하기 보다는 잘못된 정보 제공이나 계약 위반, 담합 등의 불공정 행위가 발생했을 때 확실한 처벌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TV 홈쇼핑이 강력한 규제를 받는 데 반해, 이와 유사한 콘텐츠 커머스는 아무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도 존재한다.
한국TV홈쇼핑협회 관계자는 “개인 방송 판매 상품의 경우 문제가 생겼을 때 소비자들이 보·배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라며 “홈쇼핑처럼 분쟁이 생겼을 때 물건을 파는 주체인 중개 플랫폼과 콘텐츠 제작자, 제조사가 책임 의무를 지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홈쇼핑의 경우 70조항에 달하는 심의 규제를 받는 데 반해, 라이브 방송이나 유튜브 쇼핑은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라며 “미디어 쇼핑 환경이 달라진 만큼 TV 홈쇼핑의 심의 기준을 낮추는 방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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