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사상 첫 사과 수입 추진… “美·뉴질랜드와 협의중”

윤희훈 기자 2024. 1. 10. 0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과 가격 1년 전보다 30% 뛰어… 설 앞두고 더 오를라
미국·뉴질랜드와 수입 검역 절차 논의 착수
“기후변화로 농산물 가격 변동 커져 수입 늘려야”
지난 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사과. /연합뉴스

정부가 과일 가격 안정을 위해 외국산 사과 수입을 추진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주요 성수품인 사과와 배 등 핵심 과일의 가격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자, 수입으로 공급을 늘려 가격을 잡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사과가 신선과실 상태로 공식 경로를 거쳐 국내로 수입된 적은 없었다.

1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미국 및 뉴질랜드와 사과 수입 관련 검역 협의를 진행 중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미국·뉴질랜드와 사과 수입 관련 협의를 하고 있다”면서 “그동안은 재배 농가를 고려해 사과 수입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였지만, 최근 사과 값이 너무 뛰다 보니 소비자 후생과 물가 안정 차원에서 사과 수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에서 과일을 수입하려면 병해충 유입 차단 방안 등을 담보할 검역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 사과 수입과 함께 예상치 못한 병해충이 들어와 국내 재배종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국, 뉴질랜드 정부 등과 협상해 현지에서 발병하는 병해충과 해당국의 대응 방안, 수입 시 검역 절차 등의 틀을 만들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검역 절차가 없었다.

농식품부는 과거 미국·뉴질랜드와 사과 수입을 위한 검역 절차를 마련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하다 국내 농가 반발 등을 고려해 중단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사과 가격이 폭등하고, 올해도 작황 전망이 불투명하자 대책 마련 차원에서 수입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사과 후지 상품 10개의 소매 가격은 2만9100원으로 1년 전(2만2520원)보다 29.2% 올랐다. 지난해까지 최근 5년 중 최고·최저 값을 제외한 3년 평균 가격인 평년 수준(2만2271원)과 비교해도 30.6% 높은 수준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과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과를 대체할 다른 과일의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수입 과일 유통 가격을 낮추기 위해 관세도 면제하거나 인하하기로 했다. 바나나(15만톤)와 파인애플(4만톤), 망고(1만4000톤), 자몽(8000톤), 오렌지(5000톤), 아보카도(1000톤) 등 6개 품목에 대해선 할당관세를 도입한다.

이는 소비자의 과일 수요를 다른 과일로 돌려 사과에 대한 수요를 낮추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가 큰 사과와 배의 가격을 직접적으로 낮추진 못하고 있다.

정부가 물가 목표로 제시한 ‘소비자물가 상승률 조기 2% 안착’을 위해선 과일 품목 중 물가 가중치가 가장 큰 사과 가격을 떨어뜨리는 게 꼭 필요한 상황이다. 사과의 지출목적별 품목 가중치는 2.3(2022년 기준, 2020년=2.6)이다. 사과 가격 상승률의 0.23%가 물가상승률로 반영된다는 의미이다.

사과의 물가 조사 가중치는 과일 중에서 가장 크다. 귤(1.8), 딸기(1.5), 포도(1.4) 외에 다른 과일은 모두 가중치가 1.0 이하이다. 추석 물가가 반영된 작년 10월 소비자물가조사에서 사과가 끌어올린 소비자물가상승률만 0.16%포인트(P)에 달했다. 당시 사과는 전기요금에 이어 물가 영향 품목 2위에 올랐다.

설을 앞두고 성수품인 사과 가격이 다시 폭등한다면 정부의 물가 안정 노력이 통계 지표에서는 희석돼 나타날 수 있어 물가 당국에서도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과값이 급등하면서 가계 사과 구입이 감소했다는 점을 반영해 최근 물가 가중치를 2.6에서 2.3으로 낮췄지만, 여전히 물가 통계에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농식품부가 사과 수입을 검토하는 것은 물가 안정을 넘어 식량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측면도 있다. 지난해 사과 작황이 악화한 게 일시적인 게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장기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대비해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수입처를 확보하겠다는 게 농식품부의 구상이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사과 주요 생산지로 통하던 대구·경북지역의 올해 사과 재배 면적은 2만151㏊로 30년 전(3만6021㏊)보다 44% 줄었다. 같은 기간 강원도의 사과 재배 면적은 483㏊에서 1679㏊로 늘었다. 온난화로 사과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의하면 2100년에는 강원도 일부에서만 재배될 것이라고 농진청은 예측했다.

다만 사과 농가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안정을 위해 수입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농가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에서 재배량이 적은 과일의 수입을 확대하는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에 대해서도 농업인단체인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무관세로 수입을 허용해 국내 과수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며 “수입에 의존한 단기 농축산물 수급 정책은 자칫 국내 농업 생산기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로 사과 생산량이 줄어드는 걸 막기 어려운 만큼 해외 시장 개방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족한 물량을 수입하면서도 장기적으로 국내 생산 여건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과일 수입은 일상적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식량 안보’적인 측면과 농민을 보호하는 ‘국내 자급률’을 높여야 하는 면에서 상충하는 지점이 있다”라면서도 “기후변화로 인해 농산물 가격 변동 폭이 커지고, 국내 생산 기반도 흔들려 수입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