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개 식용 금지법’ 통과 직후, ‘개고기 메카’ 모란시장 가보니
9일 정오 무렵 수인분당선 모란역 5번 출구.
모란전통시장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 지 채 500미터를 지나지 않아 폭 2미터가 조금 넘는 골목이 나타났다. 잠시 후 모퉁이를 돌아서자 이윽고 도심 일상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졌다.
개소주·흑염소·가물치·산토끼.
낯선 짐승 이름이 잇달아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골목을 따라 걷자 건강원, 농장, 생고기 같은 이름을 건 가게들이 이어졌다. 눈이 많이 와서 인지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간간히 맞은 편 모란 5일장에서 장을 보고 오다 슬쩍 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붐비는 5일장과 한산한 골목, 묘한 대조가 스산한 기운을 자극했다.
초입 가게들이 매대에 올려놓은 조류(鳥類)가 유난히 커보였다. 여느 대형마트와 달리 길게 뻗은 다리와 발톱을 제거하지 않은 채로 이 고기를 팔았다. 일부는 거위, 어떤 가게에서는 오래 키운 닭이라고 했다. 이날 추운 날씨와 하루 종일 이어진 폭설 때문인지 거위와 노계(老鷄) 껍질은 유난히 빨갛게 보였다.
개고기 파는 집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골목 중간 쯤 들어서니 개고기를 파는 집들이 속속 등장했다. 소나 돼지, 염소와 달리 개는 발굽이 없다. 누가 봐도 개고기인 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살갖은 다른 고기보다 거무튀튀했다. 털을 불로 그을린 자국도 선명하게 보였다.
건강원 혹은 흑염소 이름은 건 가게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개고기를 팔았다. 숨기지도 않았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가게 앞 한가운데 매대에 개고기를 쌓아 놓고 팔았다.
다만 간판에서 ‘개고기’라는 글자를 찾아볼 순 없었다. 모든 가게가 간판에서 ‘개’라는 글자만 도려낸 듯 했다. 개를 판다고 적어 놓지 않았지만, 진열장에는 개뿐인 곳도 많았다.
정작 사는 사람은 드물었다. 삼십분 여를 오가며 지켜봤지만 개고기를 담아가는 손님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직접 한 가게 앞에 서서 가격을 묻자 대답 대신 ‘어쩐 일로 개고기를 찾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할아버지 몸이 허하시다’고 답하자 “1킬로에 5만원, 한마리 통째로 하면 30만원”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비싸네요’라며 자리를 피하려니 곧 “먹어본 적도 없나”며 물정 모른다는 핀잔이 이어졌다.
한때 이곳 모란전통시장 내 가축거리는 대구 칠성 개시장, 부산 구포가축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으로 꼽혔다. 그러나 9일 찾은 이곳에서 이전과 같은 번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개소주를 파는 건강원 스팀기에서는 끓는 소리와 연기가 나지 않았다. 가게 사이마다 자리 잡은 영양탕 집 역시 이름을 ‘흑염소탕’으로 바꿔 달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한창 손님으로 붐빌 장날 점심 시간에도 자리를 삼분의 일 이상 채운 식당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날 국회에서는 식용을 위한 개 사육·도살을 금지하는 ‘개 식용 금지법(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 식용 금지법은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하거나 도살하는 행위뿐 아니라, 개 또는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한 식품을 유통·판매하는 행위까지 처벌한다.
앞으로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합법과 불법 그 경계에 서있던 개고기 판매가 이제 명백하게 법을 어기는 행위가 된 셈이다. 이 법은 유예기간 3년을 거쳐 오는 2027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모란가축시장상인회에는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가까이 개고기를 팔아 온 상인이 수두룩하다. 이들에게 개고기는 수십년 동안 생계를 이어가는 수단이었다. 이날 통과한 개 식용 금지법은 수십년 이어온 이들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었다.
대변혁을 앞두고 가축거리 상인들 의견은 엇갈렸다. 일부는 분노를 드러냈지만, 일부는 ‘고집하기에는 이미 개고기가 시류에서 너무 벗어나 버렸다’고 인정했다.
김용복 모란가축상인회장은 “손님이 갈수록 줄어들기도 하지만, 그 손님 중에 개고기를 찾는 사람들은 이제 열 명 가운데 한 두 명 정도”라며 “이 참에 개고기 장사는 이제 그만 두고 흑염소를 주 메뉴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란가축시장상인회는 2016년 성남시와 ‘모란시장 환경정비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살아있는 개를 진열하는 행위, 보이는 곳에서 도살하는 행위를 중단했다. 십수 년째 이어진 개 식용 논란을 의식한 결정이었다.
이후 8년 만에 살아있는 개뿐 아니라 개고기 역시 취급하지 못할 정도로 시장 환경은 빠르게 변했다. 보신탕을 팔던 일부 가게 앞에는 장사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이 낡은 채 임대 현수막만 나부꼈다.
폐점한 한 보신탕 가게 옆에서 산토끼와 꿩, 거위를 팔던 한 상인은 “5년 전에 개고기 장사를 그만둘 때도 개고기를 찾는 젊은 사람들이 일 년에 단 한 명도 없었다”며 “법으로 못 팔게 하지 않아도 나이 드신 분들 발길이 끊기면 오래 가지 않아 개고기 가게들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개고기 거리’라는 오명을 완전히 떼어내기 위해 앞으로 이 자리에 흑염소 거리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업종을 바꾸면 매월 4일, 9일 마다 열리는 모란 5일장 손님들이 길 건너 이 곳을 찾아오리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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