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감독' 염기훈이 받은 건 독이 든 성배? '승격 영웅' 찬사로 뒤바꿀 수 있을까

박건도 기자 2024. 1.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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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박건도 기자]
수원의 제9대 감독으로 선임된 염기훈. /사진제공=수원 삼성 블루윙즈
염기훈(40)이 첫 감독직을 친정팀 수원 삼성에서 맡게 됐다. '초짜 감독'이 기막힌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수원은 9일 보도자료를 통해 염기훈이 구단의 제9대 감독으로 선임했음을 공식화했다. 지난해 12월 하나원큐 K리그1 2023 최하위로 다이렉트 강등이 확정된 이후 약 한 달 만에 침묵을 깼다.

2023년은 수원에게 최악의 해였다. 창단 최초 2부리그 강등이라는 오명을 썼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꺼내든 수는 염기훈 감독 선임이었다. 부담감 속에서 지휘봉을 잡았다는 염기훈 감독은 "팬들과 함께 K리그1 재진입을 이루겠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 팬들이 있는 한 무거운 책임감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라고 다짐했다.

일단 수원은 염기훈 감독과 장기 동행을 바라보는 듯하다. 수원은 염기훈 감독과 최초 계약 기간을 2년이라 발표하며 "신임 감독의 조건으로 패배감 극복과 새로운 목표 제시 및 수행, 주요 핵심 선수들의 이탈 방지, 구단의 장기적 발전 계획 수행 등을 정했다. 복수의 감독 후보를 면밀히 검토했다"라고 설명했다. 첫 정식 감독직을 수행하는 염기훈에게 확실한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도로 파악된다.

다만 팬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염기훈 감독은 지난 시즌 중 플레잉 코치직을 내려두고 감독 대행으로 소방수 역할을 맡게 됐다. 첫 경기인 인천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0-2로 졌지만, 포항 스틸러스를 잡아내며 초반 분위기를 어느 정도 끌어 올렸다. 11월에는 수원FC와 FC서울을 연달아 잡아 최하위 탈출 희망 불씨를 살렸다. 하지만 강원FC와 K리그1 최종전에서 무기력하게 0-0으로 비기며 강등을 피하지는 못했다. 수원 팬들은 강원과 경기 직후 그라운드에 연막탄을 투척하는 등 구단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수원은 이미 시즌 초반부터 리그 최하위로 밀린 상황이었다. 두 번의 감독 교체까지 단행하는 등 나름의 발버둥도 쳤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이병근(50) 제7대 감독을 경질하는 초강수를 뒀다. 구단 레전드로 통하는 이병근 전 감독은 불명예스럽게 구단을 떠나게 됐다. 수원 감독 선임 당시 외쳤던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겠다"라는 각오는 364일 만에 끝났다.

분위기 쇄신이 절실했던 수원은 과거 강원과 서울 이랜드, 영남대학교를 지휘하며 전술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김병수(53) 감독을 제8대 사령탑으로 앉혔다. 2010년 윤성효 감독부터 이병근 감독까지 이어졌던 '리얼 블루' 기조도 깼다. 김병수 감독은 13년 만에 '비 수원인'으로서 수원 지휘봉을 잡았다.

염기훈 감독. /사진제공=수원 삼성 블루윙즈
박경훈 단장. /사진제공=수원 삼성 블루윙즈
당시 수원은 "김 감독이 촉박한 시간에도 빠르게 선수단을 쇄신할 것이라 기대한다. 수원을 본 궤도에 올려놓을 것"이라고 알렸다. 최초 계약 기간은 2023년 말까지였다.

하지만 김병수 감독도 수원을 최하위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이병근 감독 체제(11경기 승점 5)보다 성적이 어느 정도 올랐음(20경기 승점 17)에도 강등권을 탈출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강원과 수원FC, 제주 유나이티드도 같은 시기 부진했지만, 7경기를 남긴 상황에서도 12위는 수원이었다.

과거 수원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한 관계자도 구단의 상황에 고개를 내저었다. 수원의 상황을 꾸준히 지켜봤다는 그는 "수원 감독직을 맡는 지도자는 부임 최고 이유로 구단에 대한 애착을 들었다. 하지만 막상 부임하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다고 토로했다. 낭만과 현실이 다르다더라.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라고 짚었다.

수원과 연이 깊은 한 지도자도 "수원의 상황을 보면 안타깝더라. 예전에는 복잡하지 않은 전술로도 이기는 강팀이었다. 현재는 그런 모습이 없다. 경기를 보며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수원이 강등 직전까지 몰리는 걸 보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라고 토로했다.

심지어 수원은 2022년 강등 직전까지 몰리는 경험까지 했다. 당시 소년 가장으로 불린 오현규(셀틱)가 승강 플레이오프(PO) 최종전 FC안양과 경기에서 극적인 득점을 터트리며 수원을 강등 위기에서 꺼냈다. 수원을 지켰던 오현규는 유럽 도전을 위해 떠난 지 오래다.

와중에 대체자로 데려온 자원들은 오현규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외국인 공격수 뮬리치는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 초 결장하더니, 복귀 후에도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공격수 안병준과 용병 바사니까지 침묵했다. 수원의 빈공 문제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총 35골로 K리그1 12개 팀 중 최소 득점 2위에 머물렀다.

염기훈 수원 감독 대행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달 2일 강원FC와 경기. 수원 삼성 관중석에서 경기장으로 연막탄이 투척됐다. /사진=OSEN
성적이 걷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치자 수원은 감독 교체라는 급한 칼만 꺼내 드는 모양새였다. 급히 선임된 지도자들은 위기 타파를 위해 여러 카드를 시도해 봤다. 전술과 라인업 변경, 경기 도중 포메이션 변화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수원의 성적에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없었다.

김병수 전 감독도 수원의 현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부임 기자회견 당시 김병수 감독은 "당장 변화는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가 (수원 감독을)해야 한다면, 도전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라 생각했다"라며 "칭찬보다는 욕을 많이 먹지 않겠나. 당연할 것이다. 성장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일 것"이라고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였다.

당장 구단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해야만 했다. 김병수 전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2024년 말까지 계약에 대해 "내년이란 건 큰 의미가 없다. 제게 좋은 계약 형태는 아니다"라며 "힘든 상황을 헤쳐낸다면, 계약 기간은 크게 중요치 않을 것이다. 당장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면, 계약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눈앞에 놓인 강등 위기 타파만이 살 길이라고 현실적으로 파악한 대답이었다.

허나 김병수 감독의 공언은 물거품이 됐다. 계약 기간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한 채 수원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경질 발표였다는 것이 현장의 주 시선이었다. 실제로 김병수 감독은 수원 감독직에서 물러나기 며칠 전 수원의 훈련과 연습 경기를 직접 지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병수 감독이 떠난 뒤 수원은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불과 4개월 전에 경기를 뛰었던 플레잉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두는 초강수를 뒀다. 구단은 공식 입장문에서 "염기훈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염기훈은 수원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수원의 황금기를 함께한 레전드 미드필더다. FA컵 3회(2010, 2016, 2019) 우승 당시 염기훈은 두 차례(2010, 2016) 최우수 선수(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전성기 나이가 훌쩍 지났음에도 예리한 킥력과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수원 중원에서 맹활약해 팬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베테랑 수비수 양상민(39)과 함께 수원 라커룸의 정신적 지주로서 팀을 이끌었다는 후문도 적잖이 들려왔다.

김병수 전 수원 삼성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수원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김병수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염기훈 감독 대행 선임 당시 수원은 파이널 라운드 7경기를 남긴 상황이었다. 승점 22로 11위 강원(당시 25점)에 이어 최하위였다. 살얼음판 같은 경기 속에서 수원은 전례 없는 인사를 뒀다. 염기훈은 2023년 플레잉 코치에 이어 생애 첫 감독 대행직까지 맡게 됐다.

이례적으로 오동석 전 수원 단장(현 박경훈 단장)도 염기훈 대행 체제 전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앞으로 남은 7경기 동안 과연 반전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검토한 결과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라며 "구단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하고 시즌을 마친 후 서포터스들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라고 배수의 진을 쳤다.

다만 염기훈 감독 대행 선임 당시 기대감보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주를 이뤘다. 말 그대로 '초보 지도자'가 소속팀을 강등 위기에서 꺼내는 중책을 맡게 됐다. 염기훈은 감독 대행을 맡기 불과 4달 전 울산 현대와 경기를 뛰었다. 4월에는 대구FC와 5월 강원전에서도 그라운드를 밟았다. 당시 염기훈 대행은 "오랫동안 수원과 함께 하면서 무엇을 해야 팀이 좋아질 수 있을지 잘 알고 있는 만큼 강등 탈출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며 "선수들에게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다 함께 서로를 도와서 단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자'고 주문했다. 지난 일은 잊고 오늘부터 앞으로 달리는 일만 생각하겠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염기훈 감독의 당찬 포부에도 수원의 최하위 탈출은 쉽지 않았다. 경기 결과로만 보면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판단할 만하다. 염기훈 대행은 부임 후 7경기에서 3승 2무 2패를 거뒀다. 승점 11로 2023시즌 앞서 거쳐 간 두 명의 감독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현실은 강등이었다. 심지어 잡을 경기를 못 잡은 게 컸다. 수원은 지난 10월 대전하나시티즌과 홈 경기에서 2-0으로 앞서고도 후반전 뒷심 부족으로 두 골을 연달아 내주며 비겼다. 승리가 필수였던 강원전에서는 빈공 끝에 0-0으로 비겼다. 최하위로 강등된 후 염기훈 대행은 서포터들 앞에서 사과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당시 팬들의 시선은 연민에 가까웠다. 강등 직전 위기에서 지휘봉을 잡은 구단 레전드를 향한 예우라 볼법했다. 패배 후 분노를 터트리던 팬들은 염기훈 감독 대행의 연설 후 응원가를 부르는 등 전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과연 염기훈 감독이 독이 든 성배를 받았을지, 혹은 우려 섞인 최근 축구계의 평가를 뒤집고 '승격 영웅' 찬사를 받을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당장 팬들의 분위기는 싸늘해 보인다. 수원 구단의 염기훈 감독 선임 발표 후 팬들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댓글을 통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전지 훈련지에서 기자회견에 응하는 이병근 전 수원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이병근 전 수원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박건도 기자 pgd1541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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