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확대에 인기학과 쏠림 우려..서울대 자유전공 절반이 컴공·경영

유효송 기자 2024. 1. 10.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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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 대학 부스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학 상담을 받고 있다/사진=뉴스1

교육부가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치르는 대학입시에서 '무전공' 선발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융복합학문 활성화란 당초 취지와 달리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자유로운 전공 탐색 등 자유전공의 취지를 살리는 장점이 있는 반면 비인기학과의 사장화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0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 주요 대학들이 2025학년도 입시부터 자유전공학부나 광역·계열단위 모집정원 신설·확대 검토에 나섰다. 장기간의 등록금 동결 속 연간 수십억원대 국고 인센티브가 걸린 교육부 정책에 주요 대학들이 발맞춰 자유전공을 늘리겠단 것이다. 무전공 제도는 1학년생들이 1년 동안 다양한 학문을 접한 뒤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일단 서울대는 학부대학 모집정원을 기존 자유전공학부(123명)에 280명을 늘린 400여명 수준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모집인원(3496명)의 11%에 달하는 규모다. 한양대는 자유전공학부인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하고 250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인문사회계열 자유전공학부로 선발 중인 고려대도 무전공제 확대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비인기학과나 취업에 도움 되지 않는 전공은 고사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학생들이 취업에 용이한 학과를 선호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머니투데이가 2024학년도 1학기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의 '전공 선택 승인 결과'를 분석한 결과 전공 선택이 승인된 학생 156명 가운데 45명(28.8%)이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해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경제가 뒤를 이어 각각 38명, 17명 선택했다. 이 세 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이 전체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한 셈이다. 반대로 언어학과 철학과, 항공우주학, 중어중문학 등은 1명만이 선택·승인됐다.

이처럼 인기가 없지만 균형적인 학문 발전에 꼭 필요한 인문학, 기초과학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교육연구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2년까지 인문·사회·자연계열 입학 정원은 감소하고 공학·의학계열은 크게 증가했다. 인문계열 입학정원은 2003년 대비 2022년에 1만여 명이 줄어 감소율이 21.6%로 가장 컸고, 사회계열(19.0%)과 자연계열(17.5%)도 감소폭이 컸다. 전체 입학정원에서 인문·사회·자연계열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3년 54.6%에서 2022년 46.3%로 절반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와 달리 공학계열이 전체 입학정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3년 26.4%에서 2022년 29.0%로, 의학계열은 3.3%에서 8.8%로 늘었다.

가뜩이나 순수학문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가운데 자유전공 확대로 과거 실패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부제는 1994년부터 김영삼·김대중 정부 당시 국고와 연계해 추진돼 왔지만 2000년대 들어 차츰 폐지 수순을 밟은 바 있다. 자유전공학부도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과 함께 법학과를 폐지하고 기존 정원을 활용해 도입됐지만, 인기학과 진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고등학교 4학년'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대학들이 성적순으로 전공을 택하게 할 경우 부담이 가중된단 이유에서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비인기학과 문을 닫는 것은 물론 인기학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과거 학부제 실패는 (인기 학과들에 학생들이 몰리며) 관리가 버거웠던 측면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대안 없이 자유전공만 확대하면 과거 사례가 반복될 것"이라며 "계획에 따라 토대를 갖추고 단계적으로 준비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서울대 자유전공 학부장을 맡았던 양일모 철학과 교수는 "자유전공 확대는 시대의 변화되는 요구를 반영한단 측면에서 학부모와 학생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면서도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은 학문 공동체 입장에서 보면 불균등을 초래할 수 있는 갈등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작업은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며 "교육당국이 소수 학과 폐지나 교수들의 일자리 등에 대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무전공 입학 확대를 위한 세부 지침 등을 확정해 이달 중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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