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 '창'으로 들여다본 세계 경제전망은? '혼돈'과 '위기'
고약한 심보는 푸른 용의 해에도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세상에나, 틀리기를 바라는 전망을 내놓다니 원. 덕담이나 좋은 얘길 못 할 거면 차라리 말을 꺼내질 말던가, 왜 분위기 좋게 신년 인사를 주고받는 기간에 악담으로 재를 뿌린단 말인가."
벌써부터 이런 원망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지만 <인사이드경제>는 노 빠꾸. 욕을 먹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내뱉고야 마는 삐뚤어진 심성을 고칠 수는 없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욕 먹을 얘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자동차산업이라는 창(窓)을 통해
글로벌 경제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 <인사이드경제>가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자동차산업이라는 창을 통하는 거다. 많은 전문가가 세계은행이나 글로벌 경제 연구소의 전망 또는 데이터를 활용하지만, 그런 분석은 너무나도 차고 넘쳐서 굳이 내가 하나를 보탤 이유가 없다. 게다가 필자는 그런 데이터를 사용할 능력과 권한, 그리고 돈이 부족하다.
물론 자동차산업에서도 고급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종 유료 결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특정 기업의 세부 데이터가 아니라 국가별, 대륙별 거시적인 데이터라서 시간을 좀 투자하면 분석에 필요한 정보는 꽤 쓸만한 것을 모아볼 수 있다. 내가 돈이 없지 시간이 없나.
여러 산업 중 특별히 자동차산업을 선택한 데에는, 우선 <인사이드경제>가 그나마 다뤄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 외에도, 코로나19·기후위기·산업전환·무역전쟁·ESG 등 최근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는 변수에 따라 비교적 많은 영향을 받는 산업이라는 점이 중요한 근거로 작동했음을 밝혀둔다.
자동차산업 변화의 키워드
글로벌 자동차산업 변화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공급망(Supply Chain)이라 할 수 있다. 전기차 주요 부품인 반도체·배터리·모터 공급망에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료물질 공급망까지….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산업이 돌아가기 위해 각종 원료와 에너지원을 제때 공급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한때 공급망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발생한 짧은 에피소드일 거라 치부했던 적도 있다. 실제로 와이어링하네스(차량 내 전자장치 등을 연결하는 배선뭉치)를 비롯한 일부 부품 공급망 교란은 팬데믹 이후 1년 이내에 공급원을 다변화하는 방식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곧이어 반도체 공급망 위기, 전기차 부품 공급망 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왔다.
다양한 공급망 위기를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은, 몇 가지 문제가 과거에 비해 덜하다고 해도 사라지지는 않고 있다는 점, 즉 일련의 공급망 위기가 고착돼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공급망의 안정적 구축에 거의 모든 국가와 경제권이 사활을 걸다보니 이를 중심으로 엄청난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유럽연합의 주요 원자재법(CRMA) 입법 시도 등에서 미국 및 유럽연합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공급망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그나마 무역전쟁은 총칼을 사용하는 진짜 전쟁(war)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비록 전쟁의 본질적 원인이 공급망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세계 주요 경제권의 원활한 공급망 구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원료·원자재 값이 치솟기 시작했고, 자동차산업 주요 부품의 가격 상승은 곧바로 차량 가격 인상, 즉 '카플레이션(Car-flation)'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산업 변화를 나타내는 도표
지금까지 키워드로 제시한 것들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인사이드경제>만의 도표를 아래와 같이 그려보았다. 도표의 중심에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공급망이 위치해 있으며 △ 무역분쟁과 전쟁 △ 역 세계화(De-globalization) △ 전기차로의 전환 △ 인플레이션(카플레이션) 등의 키워드가 그 주변에 배치되도록 하였다.
앞에서 설명하지 않은 단어는 역(逆) 세계화인데, 이는 세계화의 반대 경향을 일컫는 개념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고 도전이 있으면 응전이 있는 법! 똑같은 원리로 세계화 경향이 탄생함과 동시에 그 반대 경향인 역 세계화도 시작되었지만, 그동안 세계화가 훨씬 강력한 힘을 가졌기에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전세계 이동성을 확 줄여버렸고, 이에 따라 공급망 생태계를 글로벌 시장에서 구축하기보다 가까운 곳에서 구축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역 세계화 경향은 비로소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두드러지게 된다. 이 경향은 다시 자신의 경제권에서 공급망을 독점함으로써 경쟁하는 다른 경제권을 견제하거나 심지어 절멸하려는 데까지 나아가면서 그 주요 수단으로 무역전쟁을 사용하게 된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면서 공급망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부품과 차량 가격이 오르는 카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공급 부문에서 가격 인상이 단행되며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는 다시 전쟁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며 공급망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가격은 더 올라가게 되고 이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한 출혈경쟁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역설적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는 요소로 진화했다.
'혼돈(Chaos)'의 자동차산업
도표를 통해 글로벌 자동차산업 전망을 한 단어로 요약해 보라면 '카오스(Chaos)' 즉 혼돈이라 말할 수 있다. 세계화의 반대 경향인 역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전기차로의 전환 경향은 분명 지속되겠지만 그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수많은 장애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기차로의 산업전환, 코로나19 팬데믹, 역 세계화와 무역분쟁은 '공급망의 안정적 구축'이라는 과제를 전세계 주요 경제권에 던져줬지만, 각 경제권이 서로 치고받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급망 위기는 끊임없는 인플레이션, 카플레이션을 낳고 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차량 생산 정체로 인해 구매자들이 차량을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 한동안 이어진 탓에, 차량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1~2년 가량 이어지며 오히려 완성차업체에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이윤율을 보장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너무 높아져버린 차량 가격은 오히려 산업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차량 가격 인하를 통해 이윤율을 희생시켜서라도 점유율을 높이려는 테슬라와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출혈경쟁이 테슬라에는 단기적인 강점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몰라도 산업 전체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성장과 회복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던 중국 시장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제 중국은 자국 시장에서의 판로 개척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을 비롯한 해외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은 반대로 중국 메이커의 진출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으려 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문제가 겹쳐지면서 글로벌 자동차산업이 그 어느 때보다 위기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혼돈의 끝에는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이
지난 3~4년 간 전기차로의 전환은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끝도 없이 솟구칠 것만 같았다. 탄소중립, 넷 제로(Net Zero)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착시현상도 있었다. 하지만 위기와 장애물은 생각보다 가까이 찾아왔으며 이제 '혼돈'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이 혼돈의 끝에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경기침체가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머지 않은 미래에 산업전환은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이라는 국면을 거치게 될 것이다. 생산·판매의 상승이 잠시 이뤄질 것 같은 상황도 있었으나 번번이 공급망 위기를 겪으며 다시 꺾이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토록 장기화될 것이라고, 그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예측한 이가 있기는 했을까.
내가 틀리더라도 새해에는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전망만큼이나 새해 글로벌 경제전망 역시 불투명하다. 글로벌 경제에 꽉 끼어 있는 한국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별다른 운이 따르지 않는 한, 그 전망이 결코 밝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산업전환 과정에서 조금씩 누적되기 시작한 위기 상황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축적돼 째깍째깍 시한폭탄처럼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 역시 곳곳에서 의심스러운 희망퇴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폭스바겐과 스탤란티스 등 완성차회사에서 감원과 구조조정 이슈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독일의 콘티넨탈을 비롯한 거대 부품사에서도 만만치 않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렇다면 이제 위기에 대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위기를 노동자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려는 공격과 움직임이 가시화될 상황이고, 이를 막아내기 위한 조직적·이데올로기적 태세를 갖춰야 한다.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한 완성차회사들이 역대급 이윤을 기록했다는 점에 안도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특히 가장 열악한 곳부터 공격하는 치졸한 자본의 속성을 감안하면, 4~5차 벤더 작은 사업장들이 밀집된 중소영세공단부터 위기가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그 뒤로 1~2차 벤더, 그리고 완성차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자동차산업 전체의 안전망을 만들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아래로부터 고민과 토론부터 시작할 때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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