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책 읽는 나라'가 싫은가...출판·독서 예산 45억 쳐냈다
국회 심의서 11억 늘었지만 지원금 삭감 기조 뚜렷
불황에 악재 겹친 출판계...독서문화 사멸 위기론
"책문화 내실 키우려면...예산 거버넌스 필요"
올해 정부 예산에서 출판지원금이 대폭 삭감돼 출판계가 긴장하고 있다. 특히 위기 대응이 쉽지 않은 작은 규모의 출판사와 지역 서점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9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올해 출판 산업 지원 관련 정부 예산은 429억 원이다. 지난 연말 국회의 예산안 심의과정에서 정부안 대비 11억 원이 증액됐지만 큰 틀에서 삭감 기조가 유지됐고 결국 지난해 예산(473억 원)에 비해 45억 원이 줄었다. 독서 문화 확산과 출판 산업 육성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윤석열 정부의 철학이 거듭 확인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출판 산업 지원 예산을 맡아 집행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독서문화 증진 지원사업 예산이 가장 많이 깎였다. 독서 아카데미 운영, 독서 동아리 활동 지원, 대한민국 독서대전 개최 등 풀뿌리 독서문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다. 지난해 배정된 59억 원이 전액 삭감되고 '책 읽는 분위기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독서경영 인증 사업 등 개별 사업(10억 원), 장애인 전자책 접근성 뷰어 개발을 위한 사업(12억 원) 등에 22억 원이 배정됐다.
"예산 칼질은 생존 위협"...긴장하는 출판인들
문학 출판계가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문학도서 지원을 위한 '문학나눔' 사업이 우수 교양·학술 도서를 지원하는 '세종도서' 사업과 통합되면서 지원금 규모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두 사업은 정부가 양서를 선정해 국고로 구매해주는 사업으로, 출판 지원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출판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세종도서 사업(84억 원)과 문학나눔 사업(56억 원)에 대한 예산은 합해서 140억 원 규모였으나 올해는 약 20% 줄어든 115억 원이 배정됐다. 문체부는 유사한 목적 사업을 통합한 것이란 입장이지만, 순수 문학 출판사들은 상대적으로 지원금 의존도가 높아 피해가 불가피하다. 한 문학 출판사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인터넷 서점 서버가 마비된 것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며칠 동안 단 한 권의 책이 안 팔리기도 했다"며 "불황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와중에 버팀목이던 지원금 파이까지 줄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역출판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지역서점 경쟁력 강화사업(5억5,000만 원),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사업(6억5,000만 원)을 합해 11억 원이었던 지역 서점 활성화예산이 4억 원으로 줄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매년 전국 서점에서 진행되는 독서문화 관련 사업이 750여 개에 이른다. 문체부는 직접 지원 대신 물류 인프라 개선 사업 등 업계 전반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재편했다고 설명하지만 전체 서점의 약 3%에 이르는 개별 서점들에 대한 지원금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올해 예정된 수백 개 문화사업이 차질을 빚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독립서점 대표는 "동네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책을 매개로 소통하는 문화 거점"이라며 "예고도 없이 예산을 삭감한 것은 풀뿌리 문화생태계로서 책방의 공공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세 출판사·창작자 지원 예산도 폐지"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며 출판산업은 이미 위기를 맞았다. 정부 지원금 중단 정책에 맞춰 사업 운용 방침을 재편하고 자금을 확보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영세한 출판사와 서점들은 녹록지 않다. 국민체육진흥기금에서 영세 출판사의 창작자를 지원하고 경력자 재취업을 지원하는 11억 원 규모 지원금도 올해부터 폐지됐다.
전문가들은 작은 출판 생태계가 스러지면 독서·출판의 공적 기능이 위축되는 만큼 내년엔 예산을 복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예산 편성과 집행권이 정부에 있다지만 예산이 쓰이는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라며 "출판 예산이 책문화의 나이테를 키우고, 내실을 다져 나갈 수 있는 '공동의 우물'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라면 예산 설계와 협의 과정을 국민에게 개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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