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고 만년 후보 선수가 만든 작지만 큰 기적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아무도 저를 야구선수로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구고 외야수 이찬은 중·고교 시절 큰 주목을 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이찬은 2-2 동점으로 승부가 연장으로 이어진 10회말 1사 만루에서 온몸을 던져 번트를 대는 일명 '개구리 스퀴즈 번트'로 대구고에 4번째 '초록 봉황'을 안겨줬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저를 야구선수로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구고 외야수 이찬은 중·고교 시절 큰 주목을 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존재감 자체가 없던 선수였다. 대주자와 대수비로 간혹 경기에 나섰던 그는 고3이 되던 지난 시즌 초까지 2년 넘게 5타석 4타수 2삼진이 전부였다. 안타를 1개도 기록하지 못했으니 통상 타율은 0.00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제51회 봉황대기에서 이찬의 잠재력이 터졌다.
봉황대기 결승전 무패 신화를 노리던 대구고는 9월 9일 목동야구장에서 대회 첫 우승을 노리는 충북의 강자 세광고와 격돌했다. 이날 선발로 나선 이찬은 2-2 동점으로 승부가 연장으로 이어진 10회말 1사 만루에서 온몸을 던져 번트를 대는 일명 ‘개구리 스퀴즈 번트’로 대구고에 4번째 ‘초록 봉황’을 안겨줬다.
이찬에게 지난해 봉황대기는 야구선수로서 꺼져가던 불꽃을 재점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가 기록한 고교통산 17안타 중 10안타를 시즌 마지막 대회인 봉황대기에서 기록함과 동시에 팀 우승의 영예와 수훈선수상이라는 개인 타이틀까지 획득했다.
당시 이찬의 끝내기 스퀴즈 번트는 1사 만루 ‘노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나왔다. 이찬은 “대기 타석에 있을 때 손경호 감독으로부터 스퀴즈 번트 사인이 들어가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하지만 스퀴즈 사인이 볼 카운트 0-2 상황에서 나와 3루 주루코치와 벤치의 감독을 번갈아 가며 사인을 확인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찬은 ”순간 ‘왜 이런 때 스퀴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여기서 성공시키지 못하면, 대구까지 혼자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번트가 성공됐을 때는 우승의 감격보다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당시 느낀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야구가 애증의 존재였다는 이찬은 “야구를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 같다. 그토록 좋아하는 야구였지만 경기를 뛰지 못해 야구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가끔 나가는 대주자, 대수비, 그 짧은 순간 맛보는 야구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167㎝로 운동선수로는 키가 작은 이찬은 “작은 키 때문인지 주위로부터 그 흔한 유급 한번 해보라는 말조차 들어 보지 못했고, 고2때는 저를 걱정해 주던 선배로부터 경기를 뛸수 있는 학교로 전학도 고려해 보라는 조언도 받을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성공의 정의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 아니겠냐. 야구를 시작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라고 못박았다.
이찬의 장래 희망은 학생 지도자다. 그는 "후보 선수 경험이 없는 지도자는 그들의 아픔과 시련을 제대로 알지 못할 수 있다. 어떤 종목이든 주전보다 많은 후보 선수가 있고 이 선수들 역시 몸 담고 있는 운동에 대한 사랑, 경기에 뛰고 싶은 마음은 주전 선수 못지 않게 뜨겁다고 본다. 그들의 마음까지 모두 이해하며 함께 성장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이찬은 봉황대기 이후 프로팀이나 대학 진학이 어렵다고 스스로 판단해 입대를 준비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 그에게 희소식이 날아왔다. 대학야구 강팀인 부산의 동아대로부터 야구단 입단 합격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프로팀, 4년제 대학 입단이 어렵다고 판단해 병역을 먼저 해결한 뒤 지도자 수업에 들어갈 계획이었다”는 이찬은 “그런데 부산 동아대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부산의 야구 강팀에서 체계적으로 지도자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봉황대기는 저의 인생을 바꿔놓은 잊을 수 없는 대회"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즈, 나이키 모자 벗는다...27년 동행 마침표
- 수원 삼성, 결국 감독에 염기훈 선임
- 프로야구, 이제 네이버·다음에서 무료로 못 보나
- 부상으로 삐걱대는 나달·조코비치... 테니스 황제들의 '장기집권' 막 내리나
- '카이저'로 불린 독일의 전설 베켄바워, 영원히 잠들다
- '리더십의 정석' 김기동 "옛 포항 제자들, 내가 왔으니 '죽었다' 싶을걸요?"
- 2024 강원청소년동계올림픽 결단식 "뜨거운 목소리로 응원해달라"
- ‘삼성맨’ 이진영 코치가 꼽은 2024시즌 키플레이어는
- ‘오구 플레이’ 윤이나, 필드 복귀 확정...“같은 잘못 반복 않겠다”
- 시즌 첫 3연승 올린 가스공사… 살아난 ‘봄 농구’ 불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