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아들과 함께 고개숙인 91세 윤세영 회장
“태영건설이 지금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선 저희 욕심이 과했던 탓이 큽니다. 그룹의 모든 것을 걸고, 태영건설을 살리겠습니다.”
9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에서 열린 태영건설 기자회견장. 윤세영(91) 태영그룹 창업 회장은 아들인 윤석민(60) 회장과 함께 단상에 올랐다. 최근 부도 위기에 몰린 태영건설의 자구안을 내놓는 자리에 ‘부자(父子)’가 나란히 선 것이다. 윤 창업 회장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채권단과 정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룹이 자금난에 내몰리자 지난달 아흔 나이에 경영 복귀를 선언한 윤 창업 회장은 50년 전 자기 손으로 설립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받아달라며 채권단과 국민을 향한 직접 호소에 나선 것이다. 필요하다면 지주회사 티와이(TY)홀딩스와 핵심 계열사인 SBS의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겠다는 추가 자구책 역시 윤 창업 회장이 직접 밝혔다.
◇구순에 경영 복귀해 워크아웃 호소
윤 창업 회장은 1961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당시 민주공화당 이동녕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한 건설 회사 임원을 지내다 퇴사해 1973년 서울 마포구 한 극장 내 사무실을 빌려 태영건설을 설립했다. 1980년대 말 1기 신도시 조성 사업 등으로 큰돈을 벌어, 1990년 국내 첫 민간 방송 사업권까지 따냈다.
윤 창업 회장은 2019년 3월 아들인 윤석민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작년 12월 태영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지자,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했다. 매출 6조원, 자산 규모 12조원의 회사를 살리고자 직접 ‘소방수’로 나선 것이다.
윤 창업 회장은 가장 먼저 채권단을 찾았다. 태영건설이 담당하고 있는 20여 사업장의 상황을 담은 보고서를 들고, 채권단 관계자를 만나 만기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만기가 돌아온 채권 480억원을 상환하지 못해 워크아웃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계열사 매각 등 자구안을 발표했으나, 오너의 사재 추가 출연을 요구하는 금융 당국의 압박이 거세졌다. 윤 창업 회장은 채권단과 금융 당국 설득에도 직접 나섰다. 지난 3일 열린 채권단 설명회에 참석해 400여 채권 금융기관 관계자 앞에 서서 “이대로는 제가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 같아 염치 불고하고 나섰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채권단 만나며 워크아웃 직접 지휘
윤 창업 회장은 워크아웃 과정도 진두지휘할 계획이다. 최근엔 이복현 금감원장을 만나 티와이홀딩스의 자금 사정을 설명했다. 이복현 원장은 윤 창업 회장 면담에 대해 “채권단과 태영 사이에 상당한 불신이 생겨 더 이상 논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만났다. 어느 정도 공감했다”고 밝혔다.
윤 창업 회장은 오는 11일 워크아웃 개시를 결정하는 채권자 협의회를 앞두고 5대 금융지주 회장 개별 면담을 요청했다. 채권자 협의회에서 채권액 기준 75% 동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직접 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설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엔 윤 창업 회장이 자구안으로 추진 중인 계열사 매각 등 실무적 내용까지 모두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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