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술관장 임명 기준이 ‘지자체장 친구’인가
미술계가 새해 벽두부터 시끌시끌하다. 지자체장이 임명하는 우리나라 대표 공립미술관 수장에 ‘시장님’의 동기 동창이 잇달아 임명되면서다.
지난달 29일 임명된 노중기 대구미술관장은 지역에서 활동해온 화가. 홍준표 대구시장의 영남중·고 동기이자 막역한 친구 사이다.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2017년 그는 지역 신문에 ‘내가 본 대선 후보 홍준표’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학창 시절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홍 후보는) 의리도 대단하다. 자식 혼사 때 연락을 하지도 않았는데 축전을 보내왔다”고 친분을 과시하면서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가장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지난해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도 논란이 됐다. 개막 일주일 뒤 당초 걸려 있던 그림 한 점을 떼고 자신이 그린 홍 시장 초상화를 걸었다. ‘시장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자, 미술관은 예정돼 있던 도슨트 해설을 취소했지만 초상화는 끝까지 떼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 시작된 미술관장 공모에 응모했고, 홍 시장은 최종 후보 3인 가운데 그를 낙점했다.
같은 날 임명된 윤의향 대전시립미술관장은 이장우 대전시장과 대전대 동창이다. 대전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를 나와 홍익대 예술학 석·박사를 거쳐 대전대 교수로 재직해 왔다. 미술인 A씨는 “미술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 관장이 된 건 시장과의 친분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고 의아해 했다.
미술계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대구 지역 예술인들은 성명서를 내고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이 전혀 없는 지자체장이 예술계에 저지른 만행”이라며 관장 선임 취소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자체장이 동기나 동창이라고 해서 미술관장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두 사람은 각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교수이지만, 미술관 운영에 꼭 필요한 전시 기획이나 현장 경험, 경영 감각, 국제적 네트워크 같은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문화 기관 수장이 권력과의 친분을 이유로 임명됐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지난 정권 때 뼈저리게 겪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인 배기동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장 임기 내내 정권 코드에 맞추려 무리수를 뒀다.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정책에 맞춰 급조한 가야전은 박물관 역사상 최악의 전시란 오명을 남겼고, 대고려전에는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를 추진위 명예위원장으로 위촉하려다 망신만 당했다. 문화가 정치의 하수로 전락할 때 벌어지는 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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