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위암은 유전되는가?
얼마 전 일이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60대 중반의 후배 L씨가 찾아와 위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병력을 조사해 보니 그의 어머니가 20여 년 전 필자에게서 위암 수술을 받았고, 형님 또한 같은 병으로 내게 치료받은 병적이 있었다. 이렇게 위암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흔한 암이다. 남자의 경우 전체 암 발생자 중 약 24%를 차지하고, 여자에서도 약 13% 발생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10명의 암 환자 중 약 2명이 위암 환자인 셈이다.
2019년 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암 발생 순위는 갑상선암 폐암 위암 대장암 유방암 순이었고, 2020년엔 폐암 간암 대장암 위암 췌장암 순으로 나타났다.
과거에 비해 위암은 진단과 치료법의 발전 덕분에 사망률이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앞선 사례처럼 가족 내에서 여러 명의 위암이 발생하면 유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수술 전 각종 검사를 받은 L씨는 내시경 상 조기위암 상태는 벗어나 약간 진행된 상태였고, CT상 임파절 전이는 없었다. 수술 후 조직 검사 상 근육층까지 침범된 위암으로 확인됐으나 조직학적으로 분화가 나쁜 종류는 아니었고, 종양의 전이가 없었다. 종양 관련 유전자도 조사해보니 모두 음성으로 나와 잘 회복돼 현재는 경과를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은 한 가계 내에 여러 명의 위암 환자가 발생되어서 혹시라도 유전되는 것이 아닌지 대단히 걱정하고 있었다.
위암이란 위에 생기는 암 전체를 이르며, 위암 중에서도 위선암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드물게 위의 림프 조직에서 발생하는 림프종과 위의 간질 세포에서 발생하는 간질성 종양, 비상피성 조직에서 유래하는 육종, 호르몬을 분비하는 신경 내분비 암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위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위선암은 위 점막의 상피세포에서 나타나는데, 위선암은 현미경으로 관찰되는 모양에 따라 다시 여러 종류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위암 세포들이 샘 조직의 고유 형태를 많이 유지하는 경우 분화도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조직의 형태가 세포 모양을 알아보기 힘든 경우 분화도가 나쁘다고 하고, 이 경우 거의 대부분 옆으로 퍼지는 형태의 미만성 암이다. 따라서 암이 임파절로 전이됐을 확률도 높고, 진행 속도가 빠른 편인데, 이런 암에서 암 억제 유전자 돌연변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우리 몸에는 암 발생을 억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있으면 암 억제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런 암 억제 기전의 장애와 환경적 요인이 맞아떨어지면 암으로 진전된다는 이론이다.
유전성 위암은 유전자 돌연변이 여부를 확인해 진단한다. 최근에는 단일 유전자 대신 수 십 개의 암 발생 위험 유전자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다중 유전자 패널 검사가 활용된다. 검사 대상은 직계가족 중 위암 환자가 2명 이상이거나, 위암이 50세 이전 젊은 연령층에서 발생하는 경우, 여러 개의 위암이 발견되거나 위 외의 다른 종류의 암이 동반 발생하는 경우, 현미 부수체 불안정성 위암이 있는 경우 고려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위암의 약 10% 정도가 가족력이 의심되고, 유전성 위암은 1∼3% 정도로 추측된다. 위암으로 진단을 받거나 치료를 받은 뒤 유전성 위암으로 확인된다면 재발이나 다른 암 발생을 막기 위해 차별화된 예방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즉, 다른 가족의 유전자 검사와 맞춤형 관리도 고려해야 한다는 거다. 아직 암으로 진단되지는 않았지만, 유전성 위암 유전자를 가진 것이 확인되면 위 내시경 등 암 검진을 20대부터 매년 받는 것이 좋다. 가수 L씨, 배우 J씨처럼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위암에 걸려 사망한 경우 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가족은 반드시 유전성 여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유전성 위암 위험 유전자가 확인된다고 해서 꼭 위암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보다 위험이 높다고 이해하면 된다.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 금연과 금주, 짜고 매운 음식을 피하고, 헬리코박터균을 치료하는 등 지속적으로 위암 예방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유전성 위암의 공포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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