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티빙, 축구는 쿠팡... 스포츠 중계도 OTT가 흔든다
CJ ENM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티빙이 지난 8일 프로야구 온라인(유무선) 중계권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티빙은 구체적인 금액을 밝히지 않지만, 2026년까지 3년간 중계권에 1200억원 정도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400억원꼴로 작년까지 프로야구를 중계한 네이버 컨소시엄(연간 220억원)의 두 배 수준이다. 경쟁 업체인 쿠팡플레이가 축구 중계로 이용자를 늘린 것에 자극받은 티빙이 프로야구 팬들을 겨냥해 통 큰 베팅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수익성 개선을 위해 줄줄이 이용료를 인상한 국내외 OTT 업체들이 구독자 확보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급등했던 가입자 증가세가 최근 주춤해진 데다가 ‘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인플레이션) 역풍’으로 구독을 해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OTT 업체가 늘고, 이용자 기대치가 올라가면서 눈길을 사로잡는 신규 콘텐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국내외 OTT 업체들은 고정 팬 확보에 유리한 스포츠 중계 시장에 뛰어들거나, 광고를 보는 대신 이용료가 저렴한 광고 요금제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티빙·쿠팡플레이 스포츠 경쟁 격화
티빙은 스포츠 중계 시장에 뛰어들면서 국내 스포츠 중 팬층이 가장 두꺼운 프로야구를 공략했다. 지난해 네이버 프로야구 중계의 경기당 최고 동시 접속자는 평균 6만1000명, 경기당 누적 재생은 61만회에 달했다. 프로야구는 매일 5경기가 열리고, 봄부터 초겨울까지 리그가 8개월 이상 이어지는 것도 매력적이다. 구독자가 한두달 만에 이탈할 가능성이 작다는 뜻이다.
야구 팬들의 우려와 달리 OTT 업계에선 티빙이 당장 프로야구 중계를 유료화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다수 야구 팬을 티빙 이용자로 흡수하면서 고화질 중계나 광고 제거, 부가 콘텐츠 같은 일부 서비스만 유료로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 이종성 한양대 교수는 “고정 팬 확보는 물론 가입자가 얼마나 증가할지 예측도 가능해 티빙이 공격적인 투자를 결정한 것 같다”고 했다.
티빙이 프로야구 중계권 확보에 나선 것은 지난 2~3년간 스포츠 중계로 톡톡히 재미를 본 쿠팡플레이에 대응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쿠팡플레이는 손흥민 선수 소속 팀 토트넘부터 맨체스터 시티와 파리 생제르맹의 내한 경기까지 주최하고 직접 중계를 맡아 인지도를 크게 올렸다. 지금은 국내 프로축구 K리그와 스페인 라리가를 독점 중계하고 있다. 이런 투자 덕분에 2021년 1월 52만명에 불과했던 쿠팡플레이 월 사용자 수는 지난달 665만명까지 급증했다.
해외 OTT들도 스포츠 중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애플 TV 플러스는 지난해 리오넬 메시가 이적한 미 프로축구(MLS)를 독점 중계하기 위해 연간 2억5000만달러(약 3300억원)를 투자했다. 넷플릭스는 골프와 테니스, F1 스타들의 이벤트 경기를 직접 주최하고 중계하면서 콘텐츠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3월엔 테니스 스타 라파엘 나달과 카를로스 알카라스의 맞대결을 주최한다.
◇광고 요금제에 경쟁사와 협력도
정체된 가입자 수를 다시 끌어올리고, 스트림플레이션이 불러온 이탈자를 줄이는 것도 숙제다. 이에 일부 OTT는 광고를 노출하는 대신 일반 요금제보다 더 저렴한 광고형 요금제를 도입하고 있다. 티빙은 올 1분기 안으로 5500원짜리 광고형 요금제를 출시할 예정이다. 현재 가장 싼 가격이 9500원인데 40%가량 저렴해지는 셈이다. 이태현 웨이브 대표는 작년 10월 “광고를 보지 않는 기존 가입자는 지키면서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라며 광고형 요금제 도입을 시사했다. 넷플릭스는 2022년 말 5500원짜리 광고형 요금제를 선보여 효과를 봤다. 작년 3분기 광고형 요금제 회원 수는 직전 분기보다 약 70% 증가했다.
해외에선 디즈니 플러스가 일부 국가에서 이미 광고형 요금제를 운영 중이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는 29일부터 광고형 요금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 월 14.99달러(약 2만원)인 구독료를 유지하는 대신 광고를 추가하고, 광고를 보지 않으려면 2.99달러를 추가로 내야 하는 형태다.
가입자 유치를 위해 경쟁사와 손을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애플 TV 플러스와 패러마운트 플러스는 두 서비스를 함께 구독하면 가격을 할인해주는 묶음 상품 판매를 논의 중이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은 지난달 10달러를 추가로 내면 넷플릭스와 맥스를 동시에 구독할 수 있는 결합 상품을 출시했다. 두 OTT를 동시에 구독할 때보다 한 달에 6.98달러(약 9000원)를 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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