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탐라 왕자묘’ 진짜 주인 찾는다
‘탐라지 초본’에 적힌 기록 바탕으로
탐라국 왕자-원나라 왕족 등 추측
내달 2000만 원 들여 정밀 조사

지역 주민의 무덤도 섞인 가운데 왕자묘로 지정된 분묘 3기가 남북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가장 남쪽에 있는 1호 묘는 가로 3m, 세로 4m가량이고, 높이는 1m 정도 돼 보였다. 특이하게 문인석 2개 가운데 1개의 머리가 잘려 있었다. 묘의 외형은 지금 제주의 무덤과는 달리 판석으로 둘러싼 직사각형의 방형석곽묘다. 2000년 제주도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됐지만 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제주도는 다음 달부터 2000만 원을 들여 왕자묘를 정밀 조사한다. 지난해 10월 지표 투과 레이더(GPR)로 묘역 6662㎡를 탐사한 결과 땅속에서 돌무더기, 직사각형 석재, 석물로 추정되는 물체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왕자묘에 대한 최초 발굴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알려졌는데 도굴이 이뤄진 뒤였다. 1998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로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고위층의 무덤으로 추정됐을 뿐 누구의 무덤인지는 확인하기 힘들었다.
왕자묘에 대한 과거 기록은 이원조(1792∼1871)가 제주목사를 지낼 때 편찬한 탐라지 초본에 나온다. 여기에 ‘왕자묘가 대정현의 동쪽 45리에 있다. 궁산의 두 하천 사이에 3기 묘의 댓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적혀 있다. 이를 기초로 왕자묘의 주인이 탐라국의 왕자라는 설과 중국 원나라(몽골제국)의 왕족이라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먼저 탐라국 왕자라는 설과 관련해 왕자는 왕의 아들이 아닌 고대 탐라국의 왕인 성주의 차상위 계급을 이르는 용어다. 고려사 등의 사료를 보면 성주와 왕자를 지배계층의 호칭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왕자는 ‘남평 문씨’ 집안에서 세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연유로 탐라 왕자묘를 왕자 계급을 지낸 남평 문씨의 일원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탐라의 지배계층이 당시 주요 거점인 한라산 이북에서 멀리 떨어진 한라산 이남까지 넘어와 묘를 조성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반론이 있다.
이보다 원나라 왕족의 무덤이라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왕자묘에서 직선거리로 2km 정도 떨어진 법화사는 고려 때 비보사찰로 원나라 왕궁에서나 볼 수 있는 용과 봉황무늬 막새가 출토됐으며 명나라 황제가 탐낸 불상이 있었던 기록이 있다. 또한 근처 강정동에는 ‘대궐터’라고 불리는 곳이 있고, 대포포구는 원이 탐라를 지배하던 시절 ‘당포’로 불린 주요 교역로로 해석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원나라가 고려와 연합해 삼별초를 평정한 후 탐라총관부를 설치한 1275년부터 100년 가까이 탐라를 지배할 당시 일본 정벌 등을 위해 법화사를 비롯한 제주의 서남부 일대를 거점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 서남부 일대는 원나라가 멸망할 당시 왕족의 유배지이기도 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원나라 양왕의 가속과 함께 위순왕의 아들인 백백태자는 1382년 원명 교체기에 제주로 유배됐다. 백백태자는 1404년, 그의 아들 육십노는 1392년에 각각 사망했다. 1444년에 ‘백백태자의 처가 나이 늙고 빈궁하여 살아가는 것이 불쌍하니…’라는 기록도 있다. 이를 토대로 왕자묘 3기가 이들의 무덤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제주의 고고학계 관계자는 “왕자묘가 누구의 무덤인지에 대한 확인이 가능한 유물이 빈약하지만 사료와 당시 정황으로 볼 때 원나라 고위층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이번 조사에서 새로운 유물이나 흔적이 나올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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