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영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기

경기일보 2024. 1.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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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주 영국 유학생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기후변화와 바이러스성 감염병 발생의 연관성이 알려지면서 이전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대중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기업과 단체를 비롯한 개개인의 인식이 증가해 충분하진 않지만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대응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환경보호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육식과 기후변화의 매우 큰 관련성이 알려지면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을 느낀다. 필자도 실제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인간의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대량생산시스템으로 본래 자연스러웠던 생산 과정들이 부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육식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게도 많은 고기를 생산, 소비하고 있다. 동물의 권리를 철저하게 무시한 비윤리적 방식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해 온실가스의 주원인이 돼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간은 더 많은 소를 사육하기 위해 지금도 열대우림을 없애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먼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식탁에 올라와 있는 식품들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지 알기 힘들다. 개개인의 체질에 맞는 식단에 한해 과도한 육식을 줄이고 채식 식단을 늘리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비건 친화적 도시로 꼽히는 런던에서는 이러한 사실 아래 채식이 대중적이다. 런던에선 이제 어느 식당에도 채식옵션이 있어 채식주의자들이 마음 놓고 외식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식물성 식품을 구매하기 쉬운 환경이다. 채식을 하지 않는 친구와 채식주의자 친구가 저녁약속을 잡는다고 가정했을 때 스테이크 전문식당이 아닌 이상 런던에서는 큰 고민 없이 레스토랑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맥도널드나 버거킹 같은 햄버거집에 가도 식물성 패티를 이용한 비건버거 옵션이 있는 정도이니 말이다. 이것은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해당된다. 장을 보러 가도 식물성 원료로 만든 대체육 식품들을 쉽게 구매해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자는 집 앞 마트의 비건 미트볼을 사 미트볼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것을 즐겨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식물성 식품이 이렇게까지 대중화돼 있지는 않다 보니 채식과 비건식품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떨어진다.

따라서 필자 생각에 채식주의자가 살기에는 한국과 비교해 사회적으로 영국이 조금 더 편하다고 느낀다. 한국의 현대 외식문화가 육식에 극도로 편중돼있는 것은 물론 다양성이 인정되기가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라는 요인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다양성이라 함은 식습관의 다양성도 포함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여전히 사회적으로 눈치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채식주의자는 풀만 먹을 것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건강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거나 측은하게 보는 시선도 많다. 다양한 영양성분과 단백질을 개개인에게 맞는 비율로 잘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지, 고기를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채식을 한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어떤 이는 건강을 위해, 어떤 이는 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식을 한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더불어 사는 지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다. 진정한 ‘공생’을 위하는 마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 불편한 사실과 마주하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엄청난 특혜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 아래, 동물과 같이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생물과 이 지구는 이러한 특혜를 가진 인간의 이기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육식을 줄인다는 것은 개인의 건강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이자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아주 작은 노력이라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라는 명대사가 있다. 필자는 인간이 이러한 개개인의 작은 노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면 분명히 이 사회와 지구가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 작은 노력이 그저 단순히 기후변화를 늦추는 일일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시작이라는 사실이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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