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도 곳곳서 ‘깜깜’… 커지는 한전發 전력 위기
지난해 말 울산에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데 이어 새해에도 전국 곳곳에서 정전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2018년 500여 건이던 정전 사고는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고,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늘리던 지난 정부를 거치며 지난해 2배로 급증했다. 200조원이 넘는 부채와 수십조원대 누적 적자 탓에 한전이 송배전망 설비 투자와 관리에 소홀하면서 전력 공급망이 불안정해졌다는 지적이다.
◇정전 사고 5년 사이 두 배로
지난 8일 오전 3시 30분쯤 경기 부천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10개 동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950여 가구가 약 3시간 동안 전기를 사용하지 못해 불편을 겪었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 배선 선로에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원인을 파악 중”이라고 했다. 7일 새벽에도 서울 서대문구에서 정전 사고가 났다. 한전에 따르면 전기를 공급하는 연결장치인 개폐 장치에 이상이 생겼고, 이 사고로 767호에 약 5시간 동안 전기 공급이 끊겼다.
정전 사고는 매년 늘고 있다. 2018년 507건이던 정전사고는 2019~2020년 600건대를 기록하다가 2021년 738건으로 늘었고, 2022년엔 933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엔 1~11월 사이 970건 발생했다. 월별 정전사고 발생 추이를 감안하면 지난해 1000건을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5년 새 두 배가 된 것이다. 정전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전력 품질의 가늠자인 가구당 연간 정전 시간은 2021년 8.9분에서 2022년엔 9.1분으로 길어졌다.
대규모 정전 사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엔 울산 남구와 울주군 일대 15만5000가구에 정전이 발생해 한전이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당시 인근 변전소에선 28년 된 노후 개폐장치를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달엔 변전소 설비 이상으로 경기 수원, 용인, 화성 인근에 전압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사고로 에버랜드 놀이기구가 갑자기 멈춰 서기도 했다.
정전사고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44조원이 넘는 누적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의 재무 위기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송배전망 관리를 책임진 한전은 지난 정부에서 태양광·풍력 사업을 자체적으로 추진하면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 제도(RPS) 등에 해마다 수조원을 썼다. 그러면서 전력 설비 투자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2022년 한전의 송·변전·배전 투자비는 6조135억원으로 전년보다 5.9% 감소해 5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안전을 위해 곧바로 전력 공급을 중단할 수 있도록 차단장치 민감도를 꾸준히 높여온 것이 정전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한전의 재무 상황과 송배전 관련 투자는 무관하다”고 했다.
◇”20년 이상 노후 설비 늘어나… 설비 투자는 줄여선 안 돼”
전력 공급망 불안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2021년부터 누적 적자 44조원, 부채 200조원을 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현실화가 계속 미뤄지면서 한전의 재무 위기가 빠르게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작년 5월엔 한전이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안을 발표하면서 전력 시설 건설을 미뤄 2026년까지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했다. 설비 노후화가 더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현재 변전소, 변압기 문제에 따른 정전 사고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데 ‘하인리히 법칙’처럼 현재의 자잘한 사고가 블랙아웃 같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한전이 재무적으로 어려워 인력 투입도 마음대로 못 하고, 설비 투자 관련 업체에 공사 대금 지급도 미루고 있어 부실 공사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20년 이상 쓴 노후 설비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기 때문에 요즘 같은 겨울철이나 원활한 전력 공급이 중요한 산업단지엔 설비팀을 늘리고 점검 주기를 짧게 하는 등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며 “아무리 어렵더라도 설비 투자는 줄여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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