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문제야”… 아이에게도 화를 부르는 말[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부모들은 아이 공부를 가르치면서 화낼 때가 많다. 보통 똑같은 문제를 계속 틀리거나, 빨리 풀지 않거나, 빼먹고 풀거나, 집중을 안 하거나, 자세가 불량하거나, 한다고 하고 안 할 때 등등 여러 이유로 뚜껑이 열린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는 배우자가 “뭘 그렇게까지 애를 잡고 그래? 그만해”라고 말하면 화가 나 있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아, 시끄러워. 너희들 사정은 모르겠고, 싸우려면 하지 마”로 들릴 수 있다. 이럴 때는 상황을 좀 파악해 본 후 ‘내가 이 상황은 알겠고, 조금이라도 해결해 보기 위해서 나도 시간과 에너지와 다리품과 손품을 팔아 볼게. 당신을 조금이라도 도와줄게’라는 메시지가 들어가게 말해야 한다.
부모들은, 특히 엄마들은 아이가 밥을 잘 안 먹거나 빨리 안 잘 때 너무나 지치고 진이 빠지다가 욱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이때도 지켜보는 배우자가 “당신이 그렇게 하니까 안 먹지”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같이 키우는 것이다. 아내가 아이를 먹이는 것이나 재우는 것에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한 끼라도 아빠가 좀 먹여 보려고 하거나 아빠가 업고 재워 보려는 등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
아내가(혹은 남편이)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다. 그런데 남편이(혹은 아내가) 보니까 뭐가 문제인지 알 것 같을 수 있다. 이럴 때 “당신이 그러니까 애가 저러잖아” 식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탓하는 대화의 시작이다. 배우자는 절대 전문가나 치료자처럼 얘기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전문가가 하는 말과 내 배우자가 하는 말은 다르게 들린다.
매번 아이를 가르칠 때마다 아이에게 욱하고 싸우게 되는 엄마가 있다고 치자. 그럴 때는 정말로 엄마가 안 가르치는 것이 낫다. 학원에 보내거나 학습지를 시키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이와 싸울 거면 안 가르치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배우자가 말하는 느낌은 다르다. 왜냐하면 부부는 이 어려움을 같이 손잡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치 전문가처럼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그러려면 하지 마”라고 해 버리면 정말 얄밉다. 상황을 격분하지 않고 바라보려고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중립적인 태도는 자칫 상대편 배우자에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누가 봐도 부부 중 한 사람이 욱하는 편일 때 “다 당신이 욱해서 생긴 문제야. 당신만 고치면 우리 집은 아무 문제 없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위험하다. 엄밀히 따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욱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거기에 배우자가 욱하도록 자극하는 요소가 있을 수 있다. 모든 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이 혹은 상대편 배우자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가진 문제가 좋아지지 않는 한,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만났을 때 욱하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나의 문제, 아이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해야지, “너만 화 안 내면 우리 집은 아무 문제 없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우리는 의사소통할 때 문제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찾기보다 쉽게 상대방을 탓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의 감정을 자극해 서로를 극도로 화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올해는 서로를 탓하기보다 어려움에 처한 상대를 한 번 더 안아주어 보기를, 그래서 작은 어려움은 그야말로 작은 어려움으로 끝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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