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고, 끌고, 뿌리고…눈, 아이는 즐거워도 어른은 마냥 즐겁지 않네
폐지 수거 리어카 끄는 노인
미끄러운 길에 ‘아슬아슬’
경비·관리인·주민들은
제설·염화칼슘 살포에 분주
함박눈이 쏟아진 9일 오전 9시40분쯤 서울 관악구 대학동. 허리를 90도 가까이 굽힌 김영자씨(67)가 자신의 몸집보다 큰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얇은 패딩 위에 걸친 얇은 분홍색 우비, 빨간 고무를 덧댄 목장갑, 운동화 차림이었다. 두 손으로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워야 해 우산은 들 수 없다고 했다.
수도권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이날에도 서울 도심 곳곳에선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보였다.
폭설에도 택배·음식 배달이 이어졌고, 눈을 치우는 경비노동자와 자원봉사자가 눈에 띄었다.
김씨는 매일 오전 5시 관악구 집 근처 채소 가게에서 폐지를 주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김씨가 하루 17시간 폐지를 모아 버는 돈은 하루 3만원 정도. 그는 “남편이 죽은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17년 동안 폐지를 주웠다”며 “날씨와 상관없이 365일 나온다”고 했다.
이날처럼 눈이나 비 때문에 길이 미끄러운 날은 사고 위험이 높다. 김씨 왼쪽 턱에는 검붉은 피멍이 들어 있었다. 며칠 전 골목길에서 넘어져 생긴 상처였다. 이날 김씨가 한 시간 동안 리어카를 끌고 돌아다닌 거리는 약 3㎞. 편의점, 고깃집, 학원, 서점 등 10곳에서 주운 폐지가 리어카에 가득했다. 고물상에서 일하는 남모씨(66)는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폐지를 주워 팔러 오는 사람이 줄어든다”며 “오늘 같은 날까지 나오는 사람들은 정말 어려운 이들일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 마포구 만리재길 언덕. 이모씨(66)가 한 오피스텔 앞에서 제설삽으로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이씨는 오피스텔 야외공간뿐만 아니라 폭 4m가량인 공용 인도의 눈도 쓸어냈다. 정년퇴임한 후 1년 전 이 오피스텔로 이사왔다는 그는 “집 앞 눈을 치우는 건 시민의 의무”라며 “사람들이 덜 다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가 치운 길을 노인과 택배기사 등이 지나갔다.
약 50m 떨어진 다른 오피스텔 앞에서는 조사득씨(85)가 인도 곳곳에 염화칼슘을 뿌렸다. 이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빗자루로 눈을 쓸었다. 혼자 사는 조씨는 지난 10여년간 공덕동 일대에서 폐지 줍는 일을 해왔고, 지난 1일부터 이곳에서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염화칼슘 더 가져와야겠지? 내가 할 테니까 좀 쉬어.” 경비노동자가 만류해도 조씨는 오피스텔 창고에서 제설삽을 가져와 인도에 얼어붙은 눈을 긁어냈다. 그는 “오전 8시부터 길을 계속 치웠다”고 했다. 그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노령연금이 안 나온다. 먹고살아야 한다”며 연신 바닥을 쓸었다.
인근 건물 경비노동자 김인호씨(58)도 손수레에 염화칼슘을 싣고 오피스텔과 주변 길, 계단 등을 오가며 제설 작업을 했다. 김씨는 얇은 외투만 걸쳤는데 “일하느라 덥다”고 했다. 그는 “오피스텔 용지가 아니어도 사람들이 넘어지면 안 되니까 주변 인도나 계단에도 제설작업을 한다”고 했다.
글·사진 윤기은·배시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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