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육아휴직 쓰면 보직 안 준다는 구청…이유는 “묵묵히 근무한 직원들 사기 저하”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다음달 발표될 2023년 수치는 이보다 더 떨어져, 0.6명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심각한 '저출생'이 국가적 화두가 된 지 오래지만, 출산과 양육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걸음마 떼듯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방정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 휴직하면 '팀장 보직 제한'…"묵묵히 근무한 직원들 사기 저하"
서울 관악구청의 '2024년 상반기 6급 이하 전보계획'입니다. 지난해 말 전보기준선정위원회 결정에 따라 새로 도입된 규정이 눈에 띕니다.
'무보직'으로 일하고 있는 6급 직원들이 휴직할 경우, '팀장' 보직 부여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휴직 기간 만큼 보직을 주지 않되, 지연 기간은 최대 1년으로 정했습니다.
팀장은 6급으로 임용·승진한 다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받을 수 있는 보직인데, 기본급 등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지방직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5급 승진으로 갈 수 있는 발판처럼 여기는 자리입니다.
이 기준은 2024년 들어 새롭게 휴직하는 직원과 기존 휴직이 종료된 뒤 연장하는 직원부터 적용된다고 돼 있습니다. 육아휴직, 질병휴직, 가족돌봄휴직 등 휴직의 종류는 관계없습니다.
이 규정을 만들게 된 이유, 즉 전보기준선정위원회의 논의 사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묵묵히 근무한' 다른 직원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되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 육아휴직 이유로 불리한 처우 금지..."법 위반 소지 커"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육아휴직)
③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되며, 육아휴직 기간에는 그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한다.
④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는 휴직 전과 같은 업무 또는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 또한 제2항의 육아휴직 기간은 근속기간에 포함한다.
지방공무원법 제63조(휴직)
④ 임용권자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필요하거나 여성공무원이 임신 또는 출산하게 되었을 때'에 따른 휴직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관악구청 현직 공무원 A 씨는 "휴직 취지에 반하는 조치"라며 "출산과 육아를 장려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고 있는 정부의 기조에 역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출산·육아지원금 등 정책으로 출산율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척하지만 정작 공무원 조직 내부에서는 출산·육아 휴직에 불이익을 주면서 모순적인 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현직 공무원 B 씨도 "휴직 생각이 있는데 이번 전보 기준으로 인해 고민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느냐"며 "육아와 출산을 장려하는 조직문화를 위해선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제도"라고 밝혔습니다.
'법무법인 여는' 소속 강민주 공인노무사는 "정부가 현재 우리나라의 심각한 저출산과 관련해 각종 출산 및 육아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육아 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정부 정책에도 크게 반할 뿐 아니라 법 위반 소지 또한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 '육아휴직자 불이익' 설문조사도…구청 "형평성 차원"
규정을 만들기 전, 구청 노동조합은 직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문항은 2개로 간단했습니다.
팀장 보직 부여 시 육아휴직을 들어갔던 직원과 계속 근무한 직원 간에 차이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차이를 둔다면 어느 정도의 차이가 적당하겠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보직 제한의 '명분'을 만들려는 구청 지도부의 요구로, 노조가 대신 나선 것이라는 게 현직 공무원들의 이야기입니다. 설문 내용에도 사실상 보직 제한 도입을 전제하는 듯한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 설문조사를 진행했던 노조 관계자는 "최종적으로는 전보기준선정위원회에서 정할 거지만, 여론을 반영하자는 취지였다"며 "여론조사를 하기에는 노조가 편리하니까 저희가 맡아서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되면 육아휴직을 쓰려고 했던 직원들이 좀 고민하게 되거나 위축될 수 있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엔 "(육아휴직을 쓰는) 시기를 조정할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보직 기간에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사람들이 좀 당겨서 쓰거나 보직을 받고 쓸 것"이라며 "안 쓰고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KBS는 관악구청을 직접 찾아가 육아휴직자에게 보직 부여를 제한하는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인사팀 관계자는 "승진하면 바로 휴직 내고, 쉬다가 나와서 보직 받는 상황이 많다 보니까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한테는 불합리하다는 생각으로 직원들도 보직 제한에 찬성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기 때문에, 형평성 차원에서 도입했다는 설명입니다.
또 승진 제한과 달리 보직 부여 제한은 불이익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보직 자리가 혜택이라고 생각하면 모르겠지만, 급여나 대우 등에 전혀 차별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여론도 그렇고, 직원들이 많이 부족하기도 하다"며 "다른 구는 진작부터 (육아휴직 기간을) 반영한다. 실적 등에 어떤 형태로든 다 반영이 돼 있더라. '우리가 이렇게 늦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직 직원들은 밑에 팀원을 몇 명씩 두고 일하는 '팀장'과 무보직 '계장'은 근무 조건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으며, 향후 승진에 반영되는 실적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고 반박했습니다. '쉬다 와서 보직을 받는다'는 인사담당자의 설명이 육아휴직을 휴가쯤으로 생각하는 관악구청의 인식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 서울 시내 25개구 살펴봤더니…"관악구 포함 16곳서 직·간접적 보직 제한"
실제로 그런지, 서울 시내 25개 구 현황을 알아봤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25개 자치구별 휴직 기간 제한 보직 부여 현황'에 따르면, 휴직 기간과 상관없이 보직을 부여한다고 답한 구는 6곳이었습니다.
한 구청 인사팀 관계자는 "육아휴직을 사용했다고 해서 팀장 보직을 받는 데 '이거는 실근무기간이 아니야. 너는 더 기다려야 돼'라고 할 수가 없는 부분"이라며 "국가 차원에서는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있는데, 저희가 여기에 공식적인 불이익을 주기에는 좀 그렇다"고 밝혔습니다.
나머지 19개 구의 경우, 휴직에 따른 일부 보직 제한이 있었습니다. 다만 4곳은 육아휴직의 경우 예외를 둔다고 명확히 답했고, 15곳에는 직·간접적 제한이 있었습니다.
보직 부여 순위를 결정할 때 휴직 기간을 '실근무 기간', '근속기간'에서 제외한 뒤 업무 성과, 역량 등과 함께 종합 평가하는 간접적인 방식이 가장 많았고, 좀 더 직접적인 제한 규정을 둔 구들도 있었습니다.
동대문구의 경우, 휴직 기간에 따라 월 단위로 감점 점수를 부여해 보직 순위를 조정했습니다. 중랑구와 구로구는 휴직 기간에 비례해 보직 대기 명부 순위를 조정했습니다.
강남구는 휴직 기간을 제외한 실근무 기간이 평균 보직 대기기간의 절반 이상이 돼야 하고, 이를 충족했더라도 복직 뒤 즉시 보직을 부여하지 않고 6개월 이상 근무 후 부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가장 적극적이고 일률적인 제한 규정을 둔 건 관악구였지만, 휴직 기간에 따른 보직 제한은 통상적으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서울동부권직장맘지원센터 소속 김서룡 공인노무사는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는 민간위탁기관이나 투자출연기관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노동자들에 대해서 불리한 처우를 하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정작 구청에선 이런 조처를 하게 되면, 과연 관련 기관들이 진정성 있게 모니터링에 응하겠느냐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 정부 "육아휴직 불이익 줘선 안 된다는 법 취지와 안 맞아"
지방공무원 제도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제도적으로 휴직과 보직 부여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명시적으로 인사규칙 등을 통해 보직을 제한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육아휴직을 했다고 해서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법의 취지와는 좀 안 맞는 게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무원 인사제도와 휴직제도를 총괄하는 인사혁신처 관계자도 "제가 알기로는 그런 사례는 없는 거로 안다"며 "국가공무원은 지침에 정당한 사유 없이 (육아휴직에 따른)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고 명확하게 적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저출생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공직 사회에서조차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눈치를 봐야 하고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화려한 정책이나 홍보보다 더 중요한 건, 출산과 양육을 우리 모두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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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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