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자율의 요건
한문 문장에서 ‘자율(自律)’은 대개 스스로 세운 기준, 예컨대 ‘청렴’이라든가 ‘올바름’ 등을 엄격하게 지킨다는 용례로 사용된다. 요즘 쓰는 한자 어휘인 자율에도 ‘스스로의 원칙에 따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는 독자적 선택권’을 강조하는 맥락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로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로 오용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교육부 장관이 “대학 정원의 30%는 아이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언급을 했고, 최근 정책 연구를 통해 ‘무전공 입학’ 확대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학생이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대학 내 학과 간 벽을 허물고 자율전공선택제를 확대하겠다.” 1월2일 교육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대학이 사회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 학과로 고착된 구조가 그 원인의 하나라는 진단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학생의 자율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이 과연 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대 쏠림’으로 상징되는 비정상적 입시 구조에서 ‘학생의 수요’라는 것이 매우 편협하게 왜곡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교육부 장관이 “의대 증원의 일부로 자율전공 입학 후 의대로 진학하는 길을 열어주면 의대 쏠림 현상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가 거센 반발을 산 사례야말로, 입시 문제를 의도대로 조절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남이 매긴 서열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독자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자율이다. 대학 입학 후에 선택할 자율권을 늘려야 한다면 1·2학년 때 다양한 전공 지식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교육 현장의 변화와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학생의 자율권은 쏠림의 심화로, 서열의 가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의 결과가 사회 수요와 과연 얼마나, 언제까지 부합할지 심히 우려된다. 장기적으로는 기초과학과 인문학, 지역학 등의 전문가가 급감함으로써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공산도 크다. 신중하게 고려하고 탄탄하게 준비한 뒤에 착수할 일이다. 백년을 내다봐야 할 교육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