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혁기의 책상물림] 자율의 요건

기자 2024. 1. 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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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문장에서 ‘자율(自律)’은 대개 스스로 세운 기준, 예컨대 ‘청렴’이라든가 ‘올바름’ 등을 엄격하게 지킨다는 용례로 사용된다. 요즘 쓰는 한자 어휘인 자율에도 ‘스스로의 원칙에 따른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는 독자적 선택권’을 강조하는 맥락으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로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로 오용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교육부 장관이 “대학 정원의 30%는 아이들에게 전공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언급을 했고, 최근 정책 연구를 통해 ‘무전공 입학’ 확대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학생이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확대하고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대학 내 학과 간 벽을 허물고 자율전공선택제를 확대하겠다.” 1월2일 교육부가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대학이 사회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존 학과로 고착된 구조가 그 원인의 하나라는 진단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학생의 자율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이 과연 그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대 쏠림’으로 상징되는 비정상적 입시 구조에서 ‘학생의 수요’라는 것이 매우 편협하게 왜곡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교육부 장관이 “의대 증원의 일부로 자율전공 입학 후 의대로 진학하는 길을 열어주면 의대 쏠림 현상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가 거센 반발을 산 사례야말로, 입시 문제를 의도대로 조절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남이 매긴 서열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독자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자율이다. 대학 입학 후에 선택할 자율권을 늘려야 한다면 1·2학년 때 다양한 전공 지식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교육 현장의 변화와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학생의 자율권은 쏠림의 심화로, 서열의 가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 선택의 결과가 사회 수요와 과연 얼마나, 언제까지 부합할지 심히 우려된다. 장기적으로는 기초과학과 인문학, 지역학 등의 전문가가 급감함으로써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공산도 크다. 신중하게 고려하고 탄탄하게 준비한 뒤에 착수할 일이다. 백년을 내다봐야 할 교육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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