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호기 칼럼] 탁월한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5년 단임
한국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5년 만에 일본에 추월당할 것 같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2023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1.4%로 추산하는데, 일본 추정치(1.5%)보다 낮다. 한국은 1980년(-1.6%) 2차 오일쇼크와 1998년(-5.1%) 외환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1968년 이후 줄곧 일본보다 성장률이 높았다.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에 뒤떨어지는 경제 성적표라는 탄식마저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성장률 목표 2.2%도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내수와 건설투자가 부진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라는 리스크에도 직면하고 있다”는 기획재정부 진단은 경제 환경이 녹록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 경제정책이 오락가락해 기업과 가계 등 경제주체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친시장·친기업을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은 최근 오히려 시장과 기업을 억누르는 행태를 드러냈다. 고물가를 끌어내린다며 기업을 압박하고, 공매도는 문제가 있다며 아예 금지시키는 반시장적 조치를 취했다. 은행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큰 이익을 낸다며 겁박하는 중이다. 윤 대통령이 “(카카오모빌리티) 택시 횡포가 매우 부도덕하다”고 밝힌 뒤 카카오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집중 조사를 받고 있다.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는 대대적인 감세 정책이 들어 있다. 세컨드 홈 활성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배제 연장 등 소비와 투자를 늘리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내년 시행할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폐지를 약속했다.
감세는 윤 정부가 일관성을 고수하는 원칙이다. 이준구 전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감세 정책이 마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거의 종교처럼 신봉하는 태도”라며 “효과도 없는 감세 정책에 집착해 시간을 낭비하면 할수록 우리 경제에 든 멍은 점차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감세 정책은 건전재정 기조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건전재정은 세출이 세입을 초과하지 않아 정부가 공채를 발행하거나 차입을 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세입이 넉넉해야 하는데, 감세 탓에 쪼그라들 우려가 커졌다. 감세로 세수는 감소하는데 건전재정을 유지하려면, 정부 지출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 이는 서민과 영세기업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피해가 될 것이다.
전 정부의 방향과 거꾸로인 정책도 상당수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소득을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는 소득주도성장을 꾀한 반면, 윤 정부는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과 규제완화를 통해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탈원전을 추진했던 전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해 원전을 확대하겠다는 상반된 정책을 편다. 외교정책도 과거에는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했으나 지금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더 힘을 기울인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기투자계획 수정이 불가피하다”면서 “최근에는 정부 정책뿐 아니라 심기까지 살펴야 한다. (카카오 계열 사례처럼) 찍히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 다들 눈치보기가 심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책 일관성을 기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임기를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행 5년 단임제에서 첫 1년은 업무 파악하는 데 써야 하고, 4년차 이후에는 사실상 레임덕이 발생해 실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2년 남짓이다. 중임제는 단임제에 비해 국정의 연속성이 높아지고, 책임 정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정리한 대통령 또는 선출직 최고 지도자가 있는 나라의 임기를 보면 164개국 중 중임제가 105곳(64%)이다. 연임 제한이 없는 나라가 48곳(29.3%)이고, 한국과 같은 단임제는 11곳(6.7%)뿐이다.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파라과이 등이 단임제 국가인데 대부분 경제와 정치가 낙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개헌론이 피어나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안에 인구 감소 대책을 명시하자고 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 전문에 5·18정신을 수록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개헌은 오는 4월 총선 이후 22대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시민의 의견을 모으는 절차가 필요하다. 1987년 이후 한국의 5년 단임 역대 대통령 중 탁월한 지도력으로 국정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찾아볼 수 없다. 제도를 고쳐야 할 이유는 명백하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haho0@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프고 계속 커지는 켈로이드 흉터··· 구멍내고 얼리면 더 빨리 치료된다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스경X이슈] 반성문 소용無, ‘3아웃’ 박상민도 집유인데 김호중은 실형··· ‘괘씸죄’ 통했다
- ‘해를 품은 달’ 배우 송재림 숨진 채 발견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검찰개혁 선봉’ 박은정, 혁신당 탄핵추진위 사임···왜?
- 한동훈 대표와 가족 명의로 수백건…윤 대통령 부부 비판 글의 정체는?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3200억대 가상자산 투자리딩 사기조직 체포… 역대 최대 규모
- 머스크가 이끌 ‘정부효율부’는 무엇…정부 부처 아닌 자문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