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처방전

김유진 기자 2024. 1. 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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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수시로 민주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바이드노믹스’ 홍보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날을 세우는 게 재선 전략으로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1·6 의회 폭동 3주년을 회고하며 “(트럼프는) 민주주의를 제물로 권력을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자신을 기소한 “바이든이야말로 민주주의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미 역사상 최초로 대선 결과에 불복, 지지자들을 선동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의 근간인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방해했던 그다. 민주주의를 들먹이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하지만 적잖은 수의 미국 유권자들이 그의 논리를 수긍한다.

진영에 따라 민주주의 개념조차 ‘경합’을 벌이고, 양측 사이에 접점은 거의 없다. 미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는 여기에서도 확인된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2023년 9월 펴낸 <Tyranny of the Minority>(소수의 폭정)에서 트럼프 집권을 계기로 두드러진 ‘민주주의 후퇴’와 ‘권위주의 역풍’은 결코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세계 각국에서 선거 결과 전복을 꾀하며 일어난 폭동 등을 연구했지만 미국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1·6 폭동은 무위로 끝났고 2022년 중간선거에서 선거부정론자들이 대거 낙마했지만, 저자들은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이 너무도 “고질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낳은 조건, 즉 민주주의 이전(pre-democratic)의 헌법에 의해 힘을 키운 급진화된 정당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아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미국 헌법의 예시로는 대선 선거인단 투표제, 연방 상원의 필리버스터 및 인구 비례를 외면한 상원의원 선출, 연방대법관 종신제 등을 들었다. 건국 200여년 이후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런 제도들로 인해 공화당은 ‘백인 중심 분노의 정치’에 기대고, 소수 극단세력의 전횡으로 다수결 원칙이 훼손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다인종 민주주의로 나아갈지, 아니면 아예 민주주의가 아닌 것으로 전락할지의 갈림길”에 놓였다고 진단한 저자들은 헌법 개정을 통한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근본 처방으로 내놓는다. 정당을 초월한 연대나 수정헌법 14조 3항(내란가담자의 공직 출마 제한) 등 기존 법률을 원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온 세계를 걱정시키고 있는 미국 민주주의가 제도 정비로 거듭날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헌법 개정이 이뤄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저자들이 ‘권위주의의 평범성’으로 명명한 정치 행태의 각성이 더욱 급선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권위주의의 평범성이란 ‘멀쩡한’ 주류 정당과 그 내부의 ‘반쪽짜리 민주주의자’들이 정치적 편의를 내세워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들을 방관하면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친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한국 여야 정치권에도 남의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김유진 워싱턴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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