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원해도 '못' 낳는 부모들…"남성 육아휴직 강제化해야"
내 아이 동영상 '하루 수백 번' 볼 만큼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라떼 파파' 요원한 남성 육아휴직 관련 인식…"제도 있어도 못 써"
"주변에 쓴 사람 전무" "출산後 60일·90일 등 아빠 육휴 강제적용 필요"
"다들 (말로는) '쓰라'고는 해요. 그런데 회사가 허락해줘서 쓴다고 한들 복직에 대한 확신도 없고, 정부 정책은 육아휴직 전과 같은 대우를 (해)주라 하는데, 100%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정책은 분명히 있는데 (실제로) 쓰지 못하는 걸림돌이 많은 거죠.
둘째가 태어나기 전 와이프가 만삭일 때부터 걱정인 게, 아내는 첫째 등·하원 시키면서도 '어디 놀러가자' 하면 못 가주니 스트레스 받고, 그걸 보는 저도 스트레스 받고…계속 악순환인 것 같아요."
경기도 김포에 거주하는 이병호씨는 현재 생후 38개월 된 아이를 한 명 키우고 있다. 곧 '다(多)자녀'의 기준인 두 자녀의 아빠가 될 예정이다. 아직 임신 중인 아내를 바라보며 마냥 기뻐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그림의 떡'인 육아휴직 때문이다.
이씨는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패밀리 스토밍(Family Storming)' 3차 간담회에 참석해 이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패밀리스토밍은 가족(Family)과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의 합성어로, 지난해 말부터 보건복지부가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다양한 구성의 청년 가구들과 만나 자유롭게 토론하는 연속 간담회다. 이날은 무(無)자녀 가구, '라떼 파파(아빠 육아휴직자)'에 이어 1자녀 가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셋이서 살아요')을 가졌다.
아이를 직접 돌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 이씨에게도 육아휴직은 높은 산이다. 그는 "제가 찾아보고 왔는데,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남성의 육아휴직을 강제했다고 하더라"며 "60일이면 60일, 90일이면 90일, (명시된) 기간 동안 임신한 가정의 남성은 아예 일을 할 수 없게 돼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휴직기간 급여 등) 금액적인 부분은 세금으로 하든 정부 지원으로 하든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육아휴직을 할 수 있어야 아기를 낳는 여성분들도 편할 것"이라며 "육아휴직을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있어서, 이리저리 알아보곤 있지만 금전적인 부분(지원)이 한없이 부족하더라"고 토로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재작년 기준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 소득대체율은 44.6%로 회원국 중 하위권(27개국 중 17위)에 속한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이 '혹시 회사에서 (은연중) 못 쓰게 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묻자, 이씨는 "제가 일하는 곳에선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제도적 미비나 사내 무언의 압박보다는 사회 전반의 '인식' 문제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씨는 "휴직 후 복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다 보니 회사 입장이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그걸 어느 정도 (확실히) 보장해준다면 저도 편하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쓰는 게) 저 스스로가 불편하다"며 "중소기업에서는 거의 못 쓰는 제도, 일부 대기업이나 복지가 좋은 외국계 기업에서만 쓸 수 있는 제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남성의 육아휴직이 '법적 의무'는 아니다 보니, 주 양육자가 여전히 여성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사측도 해당 직원을 다른 직원과 동등하게 대우하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저는 유통 쪽에 종사하는데 그때그때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중요하다. 아무래도 복귀하면 뒤처져 있을 수밖에 없고, 회사도 6개월, 1년 쉬고 온 직원을 그 자리에 똑같이 앉혀 두긴 부담일 것"이라며 "짧게라도, 출산 후 60일 또는 90일 등 남성이 그냥 (무조건) 휴직을 해야만 하는 강제성 있는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경기도 소재 초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하고 있는 노원석씨도 "지금 제 나이가 31살인데 주변에 (아이를) 낳은 친구가 (저 말고는) 아무도 없다"며 "지난해 8월까지 육아휴직을 했었는데 제가 직접 쓰려 하니 눈치도 많이 보이고, 어려운 조건들도 많더라"고 거들었다.
이어 "(올해 '6+6'으로 확대된) '3+3육아휴직제'를 썼는데 석 달이 끝나고 나니 막막하더라. 더 오래 쓸 생각도 못하고 복직했다"며 "저는 직업이 교사라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쓴 편이고, 오후 서너 시면 '퇴근하겠습니다' 했는데도 아이를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교사가 이 정도면 도대체 일반 직장인들은 어떻게 쓴다는 걸까 싶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노씨도 정부가 남성의 육아휴직을 일괄 강제하거나, 기업들이 전사적으로 이를 장려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등의 확실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의도치 않게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엄마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29개월 아이의 엄마인 이모씨는 "남자들은 막상 (육아휴직을) 한 사람도 (주변에) 거의 없고, 하더라도 이후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바람직한 강제 휴직기간으로는 "한 3개월이라도…"라며 "특히 남성이 많은 기업은 육아휴직을 더더욱 쓰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돌배기 아이를 둔 변모씨도 "신랑 회사에선 (육아휴직을) 쓰려면 퇴사를 고려하라고 했다고 한다"며 "'3+3'→'6+6' 등 제도는 계속 좋아지고 있지만 쓸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고, 저희 같은 사람들은 (되레) 더 멀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변씨는 "아기가 경계성 난청 진단으로 언어치료를 더 받아야 할 수도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저도) 복직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기를 더 봐주고 싶은데…그게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녀의 사랑스러움을 말했다. 청년들에게 출산·육아의 기쁨을 전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낳아봐야 아는데…"란 대답이 나오자 좌중에선 웃음이 터졌다.
이병호씨는 "첫 발걸음을 뗄 때도 그렇고 (말 그대로) '미친다'. 하루에도 아이 동영상을 수백 번은 본다"고 전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해줄게'보다는 '우리가 이렇게 (제도·여건을) 만들어놨어. 그러니 맘놓고 아이를 낳아보라'로 (태도를) 바꾸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 1차관은 "물이 끓어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다들 위기를 온전히 감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현실을 보면 정말 무슨 수라도 써야 하는 상황"이라며 "아이를 우리(부모)가 직접 키우고 싶다, 그런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나라에서 해줄 일이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는데 그 간절한 소망을 담아 (정책을) 잘 만들어 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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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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