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쇼군’ 다나카 가쿠에이 저택 화재… 1970·80년대 일본 권력의 상징이 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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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0년대 일본 정치를 휘어잡은 고(故)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 전 일본 총리 자택이 지난 8일 화재로 전소됐다.
다나카 전 총리 자신도 생전 "일본 정치는 메지로에서 결정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정경유착을 통해 모은 돈을 아낌없이 나눠 주며 지지 세력을 넓히는 방식으로 권력을 얻고 유지한 그는 전후 일본 정계 최대 스캔들인 '록히드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1974년 12월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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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80년대 일본 정치를 휘어잡은 고(故)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 전 일본 총리 자택이 지난 8일 화재로 전소됐다. 공원처럼 넓은 정원과 외교 공관 같은 응접실 등을 갖춘 이곳은 당시 수많은 정·재계 인사가 드나든 권력의 심장부였다.
1972년 54세의 나이에 총리직에 오른 다나카 전 총리는 그해 9월 중국을 전격 방문했다. 당시 중국의 1·2인자인 마오쩌둥 국가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를 만나 정상회담을 한 후 대만과 단교하고 중일 수교를 이뤄냈다. 한편으론 '열도개조론'이란 정책을 내세워 일본 전역을 개발 바람에 몰아넣으며, 추후 버블 붕괴의 원인이 된 투기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메지로 고텐'으로 불린 이 저택은 당시 일본 정치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장소였다. 메지로 고텐은 도쿄 메지로 지역에 있는 귀한 분의 자택이라는 뜻이다. 9일 요미우리신문이 전한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이곳엔 각료와 당 간부, 국회의원, 지방단체장이 매일 모여들었다. 대기실엔 항상 수십 명이 '총리 다나카'와 만나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다나카 전 총리 자신도 생전 "일본 정치는 메지로에서 결정된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다나카 전 총리의 재임 기간은 2년여로 짧았다. 정경유착을 통해 모은 돈을 아낌없이 나눠 주며 지지 세력을 넓히는 방식으로 권력을 얻고 유지한 그는 전후 일본 정계 최대 스캔들인 '록히드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 1974년 12월 사임했다. 하지만 '어둠의 쇼군'이란 별명에서 드러나듯, 이후에도 자민당 최대 계파를 이끌며 여러 총리를 갈아치우는 등 일본 정계의 막후 실세로서 권력을 휘둘렀다.
메지로 고텐엔 일본 정치인뿐 아니라 중국 유력 인사도 다수 방문했다. 다나카 전 총리는 1985년 이 저택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정계 은퇴를 했으나, 사망 1년 전인 1992년에도 중국에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직접 방문해 위로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메지로 고텐은 다나카 권세의 절정을 드러내는 곳이었다. 시대의 상징이 없어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화재 원인은 실화로 추정된다. 그의 딸인 다나카 마키코(79) 전 일본 외무장관은 "불단에 향을 올린 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집은 모두 탔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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