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잘알’ 의원들 4년째 재판지연 꼼수…총선 출마도 문제없어
일반 형사 평균에 4배 넘어
선고 늦어야 국회 임기 채워
증거 부동의·재판부 기피신청 활용
국회선진화법 1호는 4년째 재판 중
민주당 돈봉투 사건도 장기화 예상
‘재판 중 의원’ 대거 출마 가능성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10년 넘게 국회에서 보좌진 생활을 해온 이 모씨. 그가 모셨던 국회의원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씨는 “예전에는 재판중이라는 이유만으로 공천심사에서 감점 요인이 됐고, 때문에 신속하게 판결을 받고 사법이슈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리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기소가 되더라도 검찰 탄압만 외치면 공천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게 정치적으로 이득”이라며 “재판지연 전략이 여의도에 만연해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국회의원이 형사재판을 받는 경우 1심 선고까지 1년을 훌쩍 넘기는 것은 기본이다. 현재 형사재판을 중인 현역 국회의원은 26명의 1심 평균 재판 기간은 887일에 달한다.
‘국회선진화법’ 위반 1호 사례로 2020년 1월 재판에 넘겨진 여야 국회의원 11명은 1심만 4년째 진행 중이다. 피고인이 너무 많고, 다뤄야할 증거도 너무 많다는 것이 재판 공전의 이유다. 11명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도 수 년째 1심 재판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의원들이 ‘거북이 재판’을 선호하는 이유는 유죄 판결이 예상되는 상황에선 선고를 늦춰야만 국회의원 임기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2020년 1월29일 법원에 접수돼 1심 결론이 날때까지 3년10개월이 걸렸다. 사건 당사자 송철호 전 울산시장은 2022년 6월 임기 4년을 마쳤고, 징역 3년을 받은 황운하 민주당 의원도 항소를 결정해 임기를 모두 채울 전망이다.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횡령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 무소속 의원 역시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판결받았지만 상고를 결정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재판 지연 기술’에 관한한 도가 텄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의정활동을 앞세운 재판 불출석·법관기피, 증거 부동의, 무더기 증인 신청, 변호사 사임까지 방법도 다양하다.
6개월 내 선고를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사건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사건이 복잡한 정치인들에게는 예외가 적용돼 왔다. 이 대표는 국정감사·단식 등을 이유로 재판에 두 달간 불출석해 절차가 상당부분 지연됐다. 이 대표가 ‘테러’로 병원에 입원한데다 담당 재판부 부장판사마저 사표를 내면서 4월10일 총선 전 선고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불법 대북송금’ 혐의 재판에서 법관 기피신청·증거 부동의 방법으로 재판을 최대한 끌기도 했다. 이 전 부지사의 1심 재판은 파행을 거듭하면서 해를 두 번이나 넘기기도 했다.
이스타항공 주식을 계열사에 저가 매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이상직 전 의원도 고의적 재판 지연 행위로 재판부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1심에서 7차례나 변호사를 교체했다. 새로 선임한 변호인이 사건을 담당한 지 얼마 안 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 연기를 끊임없이 요청했다.
이 전 의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재판에 수 차례나 불출석하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 확산으로 교도소가 닫혀 있어 재판 기록을 확인 못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재판부는 “재판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것이 명백하다”, “이런 식의 재판은 처음이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기동민·이수진(비례) 민주당 의원은 검찰 측과 증인심문 일정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면서 시간을 벌었다. 지난해 8월 변호인 측은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처리 절차가 끝난 뒤 재판을 재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기소된 이 사건은 8월부터 5개월 간 중단 상태다. 두 사람의 재판은 이달부터 재개될 예정이다.
정치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이 4월 총선에 출마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민주당 돈봉투’ 의혹 사건으로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검찰로부터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이밖에 송영길 전 대표 측으로부터 돈 봉투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20명 의원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예전같으면 공천에 감점 요인이 됐겠지만 민주당은 ‘공천 불이익은 없다’는 분위기다. 이들이 출마해 당선이 되면 22대 의원 임기까지도 다 채울 가능성이 있다. 무조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지연 꼼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에게 보장된 권리를 제한하는 건 또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서다. 3선 의원의 한 보좌관은 “결국 국민이 직접 표로 심판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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