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직접 돌보도록…"어린이집 돌봄보단, 육아휴직 늘려야"
참석자들 "남성 휴직 보편화돼야…강제휴직 등 검토 필요"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아이가 엄마·아빠라고 처음 말한 순간, 아장아장 첫걸음을 뗀 순간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아이 옆에 있을 시간이 없어요."
9일 서울 서대문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저출산 현장 간담회에서 첫째 아이의 임신·출산·양육을 겪은 부모들은 '아이를 직접 볼 수 있는 육아휴직 제도와 육아시간 이용의 활성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간담회에는 3개월에서 5세 사이의 자녀 1명씩을 키우고 있는 청년세대 부모 9명이 참석해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느낀 점과 필요한 정책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부모들은 현재 맞벌이 가정 등 돌봄이 어려운 가구를 위해 어린이집 연장보육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기관 돌봄보다도 '아이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38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참석자 이모 씨는 "연장보육이 가능하다지만, 아이들도 혼자 덩그러니 저녁까지 남아 있으면 울고 힘들어한다"며 "아이가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남아있는 걸 보면 심적으로 종일 돌봄을 활용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가 경계성 난청 진단을 받아 조금이라도 더 곁에 있어 주고 싶다는 다른 참석자는 "육아휴직을 더 쓸 수 있는 상황이지만, 금전적 문제로 아무래도 복직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본인을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노모 씨는 "수업시간 전후로 학교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늘봄학교'가 곧 도입되는데, 아이들도 학교에 오래 남아있고 싶어 하지 않고, 부모들도 고민이 많다"며 "일단 육아 시간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육아휴직·육아시간 사용이 어려운 이유로 금전적인 어려움과 직장에서의 부정적인 인식을 꼽았다.
육아휴직을 선택했지만, 아파트 대출 금리와 생활비 압박에 나날이 부담을 느낀다는 이모 씨는 "둘째를 갖고 싶지만 제 욕심이 아닌가 싶다"며 "육아휴직 지원금과 기간이 늘어나서 다행이지만, 현금 지원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참석자도 "작년에 3개월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돈이 하나도 없어 얼른 복직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전했다.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쓰라고 하지만, 회사 내 인식이 좋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는 다른 참석자는 "먼저 썼던 회사 선배들도 육아휴직을 권유하지 않는다. 복직 시 회사에서 현재와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부모들은 하나같이 '남성 육아휴직'이 보편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편 회사에서는 육아휴직을 쓰고 싶다면 퇴사를 고려하라고 한다는 참석자 변모 씨는 "부모 공동 육아휴직제 지원금과 기간이 늘어났지만, 저희 부부는 제도가 좋아질수록 혜택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라고 호소했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결국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됐다는 이모 씨는 "아직도 우리나라 기업에선 남자가 꼭 육아휴직을 해야 하냐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다"며 "3개월 정도라도 비용을 지원해 남성의 휴직을 강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이밖에 성장기에 따른 단계별·지속적 지원과 소아의료체계 강화, 1대 1 돌봄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젊은 부모들은 청년들 사이에 출산과 양육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퍼져 있는 상황에 대해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아이로 인한 행복은 겪어 보면 안다"며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아이 동영상을 돌려본다는 이모 씨는 "청년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우리가 이 정도로 (환경을) 만들어 놨다'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아이를 낳고 나서 저희 부모님부터 형제자매들까지 온 가정이 더 화목해졌다"며 "처음에는 한 명만 낳으려고 했지만 둘째를 갖고 싶다. 필요한 부분이 잘 반영된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간담회를 주재한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결국 아이를 키우고 싶은 여건을 만드는 게 나라에서 할 일인 것 같다"며 "둘째, 셋째 출산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이 들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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