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개 식용 금지

이명희 기자 2024. 1. 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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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국회포럼과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민행동이 9일 국회 앞에서개식용 종식 특별법 제정 환영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 개국 후 밥상의 가장 큰 변화는 육식의 확산이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와 달리 조선은 ‘육식 금지’를 철폐했다. 당시 양반들 사이에선 소고기가 최고 인기였던 모양이다. 소의 씨가 마를 것을 우려한 왕실이 ‘소 도살 금령’(우금령)까지 내려 열풍을 잠재우려 했음에도, 밀도살만 성행했다고 한다. 고기 맛을 알아버린 지배층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니 실효를 거둘 리가 없었다.

개고기를 서민들이 단백질 공급원으로 즐겨 먹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양반들 역시 개고기를 즐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책 <조선의 탐식가들>을 보면, 의외의 ‘개고기 애호가’는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이 개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했음은 흑산도로 유배 간 형 약전에게 보낸 편지로 알 수 있다. 다산은 형에게 개 잡는 법에서 요리하는 법까지 알려주며 보신을 당부한다.

한국에서 개 식용 논란은 오래됐다. 동물단체가 개 식용 종식을 끊임없이 주장했지만, ‘전통 식문화’라는 여론에 힘을 받지 못하곤 했다. 2001년 MBC 라디오에서 손석희씨와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말다툼은 그간 논쟁의 지평을 보여준다. 당시 개 식용을 ‘야만적’이라고 한 바르도에게 ‘문화적 상대성’을 지적한 손씨에게 시민들은 열광했다. 2022년 3월까지 고교 사회문화 교과서에 문화 상대주의 사례로 개고기가 소개될 정도였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고 동물복지 인식이 개선되면서 개 식용 금지 목소리가 커졌다. 개는 현행 ‘축산법’상 가축에는 포함돼 있지만, ‘위생관리법’에서 이야기하는 가축에선 제외돼 있다. 이 때문에 개고기는 불법인데 개농장은 합법인 이상한 나라가 됐다.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여야가 모처럼 뜻을 모았다. 식용을 위한 개 사육·도살을 금지하고 3년 유예를 두는 ‘개 식용 금지법’이 9일 국회를 통과했다. 동물단체들은 “생명 존중을 향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젠 논쟁을 끝낼 수 있을까. 오늘 어딘가에서 또 벌어질 것이고,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물론 음식을 법으로 막는다니,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래도 굳이 반려동물 1위인 개를 식탁에 올려야 하겠는가. 정부가 개농장의 업종 전환을 돕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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