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박씨' 배인혁 "주연 책임감에 부담…우수상에 깜짝 놀라"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제가 우수상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당연히 다른 분이 받으실 줄 알고 '박수치러 가야지' 생각하고 시상식에 갔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수상 소감을 어떻게 말했는지 기억도 안 났죠."
드라마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이하 '열녀박씨')에서 남주인공 강태하를 연기해 작년 MBC 연기대상 우수상을 거머쥔 배인혁은 "시상식이 끝나고 집에 가는 차에 올라타 수상 소감 동영상을 보고 나서야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게 됐다"며 얼떨떨한 소감을 표현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인혁은 "한 해를 한 작품에 '올인'한 게 처음이었다"며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좋게 마무리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12부작인 '열녀박씨'는 지난 6일 9%대 시청률로 종영했다. 당초 5%대로 출발했던 시청률이 최고 9.6%까지 오르는 등 TV 드라마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선전했고 마지막회도 최고치에 가까운 9.3%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열녀박씨'는 조선시대에 남편을 잃은 박연우(이세영 분)가 현대로 넘어와 벌어지는 일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
연우는 결혼식 첫날 가슴에 병을 앓던 남편이 죽고 실의에 빠져 있는데, 복면을 쓴 괴한의 손에 납치돼 우물에 던져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대 서울의 한 호텔 수영장이다.
어리둥절한 연우는 조선시대에 죽은 남편과 똑같이 생긴 태하와 마주친다. 당황한 연우에게 태하는 돌연 계약 결혼을 하자고 한다.
현대의 태하는 재벌그룹 후계자인데, 그룹 회장인 할아버지가 지병을 앓으면서도 수술을 거부하자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으려 가짜 신부를 구해 결혼하는 것처럼 위장하기로 한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가짜 신부가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자 눈앞에 나타난 연우에게 계약 결혼을 제안한 것.
배인혁은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소재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며 "전에도 이런 장르가 있었지만, 운명과 인연이 이어지고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가 연결되는 것이 신선하고 짜임새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배인혁은 '열녀박씨'에서 조선시대의 태하와 현대의 태하 사실상 두 인물을 연기했다. 현대의 태하가 조선시대 태하의 환생이라는 암시가 등장하지만, 두 인물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조선시대 태하는 어린 시절에 연우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갖고 짝사랑해온 인물이다. 가슴에 병이 있는 것을 감추고 결혼한 것에 죄책감을 품고, 결혼 첫날 연우에게 병을 앓는다고 고백하던 중 피를 흘리고 쓰러진다.
현대의 태하는 '안드로이드'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로, 기계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일에만 몰두하고 연애나 결혼에 관심이 없었으나 연우를 만난 뒤로 차츰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배인혁은 "조선의 태하를 연기할 때는 연우를 향한 애절함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으려고 애썼다"며 "이와 달리 현대의 태하는 '무감정 끝판왕'이라는 설정에 따라 연기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이런 배우의 해석은 드라마에 충실하게 담겼다. 같은 배우가 연기했음에도 조선시대 태하는 다소 유약하고 섬세한 모습으로 그려졌으나 현대의 재벌가 후계자 태하는 거침없이 일을 진두지휘하는 자신감에 찬 인물로 표현됐다.
배인혁은 2019년 데뷔한 후 비교적 단기간 만에 연달아 주연을 맡고 연기력도 인정받으며 빠르게 성장한 배우다.
그는 2022년 대학교 응원단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치얼업'에서 주인공을 맡아 그해 SBS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았고,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송한 '열녀박씨' 주연으로 MBC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잇달아 주연을 맡게 된 것에 대해 "아무래도 부담감도 크고 책임감도 당연히 따르는 것 같다"며 "데뷔한 기간에 비해서 빠른 시간에 큰 역할을 맡다 보니까 누군가는 차곡차곡 쌓았을 과정이 조금 빠진 것 같아서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작품을 거듭할수록 점점 틀에 박히지 않고 자유롭게 연기하려고 노력한다"며 "전보다는 더 과감해진 느낌이 있고, 그런 면에서는 성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배인혁은 지난해 11월 '열녀박씨' 촬영을 마친 뒤로는 후속작을 정하지 않고 쉬고 있다고 한다.
배인혁은 "데뷔 후에 이렇게 쉬는 건 처음이라서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쉬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고 재충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그에게 4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온 원동력이 뭔지 묻자, '욕심'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욕심이 아니었으면 하고 싶은 일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제가 아직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하고 큰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더 경험을 쌓고 '내공'을 쌓고 싶어서, 부딪히고 도전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인혁은 도전하고 싶은 장르를 알려달라는 질문에는 "장르보다도 극대화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며 "감정이 극대화될수록 연기할 때는 어려워도 과정이 재미있다"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선 "어떤 캐릭터든 잘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욕심을 드러냈다.
"저는 아무 옷이나 입혀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 캐릭터로만 봐주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 작품에서도 보고 저 작품에서도 봤지만, 같은 사람인지 몰라볼 정도로요."
jae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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