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자가 강한 것”···하늘의 별이 된 ‘카이저’ 베켄바워
선수로,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제패
월드컵 조직위 등서 행정가 면모도
홍명보 “그분과 같은 포지션 영광”
“그분과 같은 포지션으로 뛰면서 ‘한국의 베켄바워’라는 애칭이 붙은 것 자체가 영광이었죠. 축구계에 정말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 돌아가셨다고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한국의 베켄바워’ 홍명보 K리그 울산HD FC 감독은 독일 축구의 전설이자 한국 축구와도 인연이 깊은 프란츠 베켄바워의 타계 소식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범접할 수 없는 실력과 절대적 카리스마로 그라운드를 지배했기에 ‘카이저(황제)’로 불린 베켄바워가 하늘의 별이 됐다. 9일(한국 시간) 독일 dpa통신에 따르면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인 베켄바워는 전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78세로 숨을 거뒀다. 유족은 그의 사망 원인을 공개하지 않았다.
1945년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워는 열세 살 때인 1958년 독일 프로축구 명문 뮌헨에 입단했다. 뮌헨을 네 차례 분데스리가 정상에 올려 놓았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다.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으로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현역 시절 베켄바워는 존재 자체로 축구 수비 전술에 일대 변혁을 불러온 ‘창조적 파괴자’였다. 커리어 초반과 후반에는 중앙 미드필더로 꽤 오래 뛰었으나 가장 빛난 포지션은 ‘리베로’ ‘스위퍼’ 자리였다. 리베로나 스위퍼가 1960년대에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으나 베켄바워는 이 포지션에 공격적인 요소를 도입해 전에 없던 특별한 수비수로 떠올랐다. 율리안 나겔스만 독일 대표팀 감독은 “베켄바워의 리베로 포지션에 대한 해석이 축구를 변화시켰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베켄바워는 지도자와 행정가로도 승승장구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듬해인 1984년 불과 39세의 나이에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베켄바워는 카리스마로 스타 선수들을 한데 묶어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1988년 유럽선수권(유로1988) 3위 등의 성적을 냈다.
베켄바워는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에 이어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제패한 역대 두 번째 축구인이다. 친정 뮌헨 지휘봉을 잡아 1993~1994시즌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기도 한 베켄바워는 이후 행정가로 나서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뮌헨 회장직을 맡았고 이후 명예회장을 지냈다.
한국 축구와 인연도 깊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동시대에 분데스리가를 누볐다. 베켄바워가 미국 뉴욕 코스모스를 거친 뒤 독일 무대로 복귀했던 1980년부터 1982년까지 두 스타는 경기장에서 만났고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타로서 인연을 쌓은 뒤 우정을 이어갔다. 차 전 감독의 아들 차두리 국가대표팀 코치가 2010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으로 이적할 당시 취업 비자 추천서를 베켄바워가 써줬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한국의 베켄바워로 불린 홍 감독과는 국제축구연맹(FIFA) 선수분과위원회 활동을 함께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으로 지도자와 행정가로서도 성공적인 길을 걸은 베켄바워는 홍 감독의 롤모델이었다. 홍 감독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FIFA 회의에서 인사를 나눌 때마다 정말 젠틀하신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정말 따뜻하게 대해주셨다”며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 슬픔이 올라온다”고 했다.
베켄바워는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행정가로서 모두 한국을 방문했다. 1979년 서독 국가대표팀 선수로 방한해 서울과 부산에서 경기를 치렀고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서독 대표팀을 이끄는 감독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유치위원장과 조직위원장을 맡는 등 행정가로 나선 뒤에는 더 자주 한국을 찾아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베켄바워는 1974년 서독 월드컵 때 길이 회자되는 명언을 남겼다. 당시 우승팀 서독과 주역인 베켄바워보다 준우승팀인 네덜란드의 에이스 요한 크라위프가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는 등 더 주목받았다. 이때 베켄바워는 이렇게 말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서재원 기자 jwse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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