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표팀 캉테', 안영학을 아십니까?...한국을 너무나 사랑했던 K리그 출신 미드필더
[마이데일리 = 노찬혁 기자] K리그 팬들은 북한 대표팀 미드필더 출신 안영학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안영학이 일본 요코하마에서 유소년 클럽과 재일 한국-조선인 축구 대표팀에서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안영학은 JTBC 방송 '뭉쳐야 찬다 3'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안영학은 뭉쳐야 찬다 축구팀인 '어쩌다벤져스'를 상대로 맞대결을 펼친 'FC 요코하마 코리아' 팀 감독을 맡았다.
안영학은 활동량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중원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하드워커 타입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현대 축구에서 은골로 캉테와 비슷한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북한 대표팀 캉테'였다.
안영학은 1978년 10월 25일 일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시에서 태어났다. 재일 조선인 3세 출신이다. 5살 때 부모를 따라 도쿄로 이사해 도쿄조선제3초급학교, 중고급학교, 중·고급부를 거쳐 릿쇼 대학으로 진학했다.
릿쇼 대학에서 안영학은 대학 1년차 선배인 아라이 켄지를 확인하고 있었던 일본 J리그 프로팀 알비렉스 니가타 코칭스태프에게 발견돼 졸업 후 2002년 프로의 꿈을 이뤘다. 니가타에서 안영학은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2003년 J2리그에서 우승했다.
니가타의 J2리그 우승과 동시에 팀의 J1리그 승격에 공헌했다. 로테이션 자원으로 분류됐던 안영학은 2004년 팀의 주축 선수로 발돋움했다. 2005년에는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해 21경기에 출장했다.
2006년 안영학은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서 입단하며 K리그에 입성했다. 안영학은 부산에서 2시즌 동안 39경기 5골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올스타전에도 선발되는 K리그 대표 선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2007년 9월 성남 일화(現 성남FC)전에서 다른 선수와 충돌하며 신장에 부상을 입었다. 2008년 안정환과 맞트레이드 형식으로 수원 삼성에 이적했지만 2년 동안 18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0년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해 5년 만에 J리그로 복귀했다. 2011년 가시와 레이솔, 2014년 J2리그 소속의 요코하마 FC를 거쳐 2017년 3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안영학이 국내에서 이름을 알린 것은 바로 국적 때문이다. 2002년 9월 7일 서울에서 열린 남북 통일축구 경기 한국과 경기에서 안영학은 북한 대표로 데뷔했다. 2004년 9월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태국전에서는 A매치 데뷔골을 포함해 멀티골을 터트렸다.
이후 2010 국제축구연맹(FIFA) 남아공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정대세와 함께 포함됐다. 안영학은 북한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브라질과 조별리그 1차전에서 풀타임 출전했고, 포르투갈(2차전), 코트디부아르(3차전)와 경기에 모두 풀타임으로 뛰었다.
안영학은 북한 대표팀에서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매우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스타그램에서 손흥민을 팔로우하고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누르고 16강 진출에 성공한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다.
안정환의 광적인 팬이기도 하다. K리그에서 당시 수원에서 뛰던 안정환을 상대로 부산 소속으로 맞대결을 펼쳤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같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을 보고 자신의 좌우명을 '꿈은 이루어진다'로 정했다고 한다. 국내 축구 잡지 '포포투'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칼럼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현재 안영학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학교 후배들에게도 무료로 축구를 가르치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고 있다. 2020년 9월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축구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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